지금은 그들 모두 멸망이라는 불길 속에 타 없어졌지만 불에 타는 것들은 비슷한 속성을 지니는 법이다.
이를테면 숲의 나무처럼 도망치기보다는 그 자리에 지키고 선 채 자신이 불타기를 기다리는.
네이버 스토리에서 연재 중인 로드워리어라는 필명의 소설가가 연재 중인 아집숨(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리 진지한 소설은 아니지만 문장력이 평균 이상이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서 조금씩 읽고 있죠.
위의 글은 25화에 나오는 내용인데, 사람들 중에는 나무와 같은 인간들이 있다는 말에 제 가슴이 박혀서 소개합니다. 나무와 같은 이들은 가연성을 가지고 있어서 불이 나면 불을 피해 도망치는게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을 지키고서 자신이 불탈 지언정 그때까지의 삶과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는 게 마치 저 자신의 지난 인생을 보는 것 같아서 눈에 밟힙니다.
조금만 이득이 있어도 기존의 삶의 양식과 거처, 직장을 야무지게 옮기는 것도 똑똑한 삶의 방식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오죽하면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라는 용어가 뭔가 있어보이고 지혜로운 삶의 방식처럼 쓰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걸 잘 못하겠어요. 내 가족을 떠나는 것도, 내가 근무하는 직장을 옮기는 것도,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옮기는 것도 쉽게 못하겠습니다. 단순히 안정적인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귀찮고 고민하는 걸 싫어해서 정말 좋은 진보의 기회들을 계속 놓쳐온 건 아닌지 하는 불안함이 항상 제 어깨르 누르고 있고, 언젠가는 깨질 수 밖에 없음에도 “날마다 하던 것이 계속 반복되고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강한게 딱 “나무”라는 비유에서 저를 상징하고 있다는 울림을 느꼈습니다.
이런 지금의 제 모습에 만족하면 안된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음에도 감정적으로는 타성과 습관의 노예처럼 변화와 이동에 거부감을 느끼는 저 자신을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지금의 내 상태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스스로와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좀 더 좋은 정반합의 결론을 내기 위해 씨름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