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이전 시대의 이해

사람들이 경제위기나 거품붕괴를 전망하면서 흔히 쓰는 표현이 “대공황” 수준의 무언가가 온다, 대공황을 넘는 충격이 올거다는 식으로 주장하고는 합니다. 그만큼 대공황이라는 건 인류의 마음에 깊이 자리잡은 충격과 공포로 자리매김하고 있지요.

그런데, 심리적인 측면이 아니라 실제로 당시와 같은 수준의 거품붕괴나 경제위기가 요즘에도 올 수 있는지를 전망하려면 어떤 작업이 필요할까요? 가장 직접적으로는 대공황의 충격 직전까지 어느정도로 거품이 있었는지를 확인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거품붕괴의 충격은 그 전까지 쌓여있던 거품의 크기와 비례할테니까요.

대공황 이전의 10년, 즉 1920년부터 1930년까지를 사람들은 보통 “광란의 20년대”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주식을 비롯한 투기열풍에 사람들이 푹 빠져서 미쳐있었다는 걸 상징하는 표현인데, 당시에 사람들이 얼마나 투기열풍에 빠져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많은 증언과 기록들을 집대성해서 하나의 드라마처럼 서술해놓은 책이 있습니다. 존 브룩스가 쓴 “골콘다”라는 책인데, 당시를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동감넘치는 시대묘사가 정말 재밌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하나의 일화가 있는데,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RCA는 당시 미국에서 첨단 테크기업으로 통용되는 라디오 제조회사입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기술 성장주에는 대중에 관심이 많이 쏠려있었고 RCA도 당시 굉장히 주목받던 주식이었죠 해당 주식을 주가조작해서 엄청난 돈을 벌어간 세력이 있었는데, 이 세력에 돈을 대준 인물들이 하나같이 사회의 명사들입니다. 크라이슬러 창업자인 월터 크라이슬러, 철강업계의 대부인 찰스 슈왑, 록펠러 가문의 핵심 이너써클이었던 퍼시 록펠러(록펠러의 조카), 언론사인 “월드”지 편집장 허버트 스워돈, 민주당 전국위원장인 존 라스콥 등등,,,

오늘날로 보면 재벌 회장, 정치인, IT 창업자 등등 내노라하던 유명인사들이 자금을 대고 RCA 사장의 부인까지 끌어들여 작전을 친겁니다. 요즘 같으면 이거 하나만으로도 정권이 날아갈 어마어마한 스캔들이겠지만, 당시엔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주가조작 상황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 얼마를 벌어서 전주들에게 얼마가 분배되고, 작전 친 사람에게 얼마가 돌아갔더라는 것까지 소식이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당시엔 이런 주가조작이 불법이 아니었거든요. 심지어 여론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시시각각 이들의 주가조작 과정이 여러 찌라시에 돌아다니는 걸 보고 따라서 투자한 사람들도 같이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이렇게 주식으로 돈을 버는 행위를 매우 자랑스러워 하는 분위기까지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투자가 아닌 투기행위로 돈을 버는 것에도 대놓고 자긍심을 가지며 공공연하게 드러내놓고 자랑하며, 듣는 사람에게 부러움과 시기심을 일으키는 것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 대에 최초로 발생했던 분위기였습니다. 

그 전에는 사교모임에서 증권 브로커가 자기 일에 대해 대화주제로 꺼내놓는 거 자체가 터부에 가까왔는데, 2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심지어 여성들 사이에서도 이들이 인기있는 대화상대로 부상하게 된거지요. 당시 주식 투기행위가 얼마나 공공연하고 자부심 넘치는 일이 되었냐 하면, 월가의 명사들은 틈만 나면 하는 말이 “이 나라(미국)는 투기로 세워진 나라다!”는 거였답니다. 

당시의 이런 분위기를 책으로 접하고 지금을 돌이켜보면, 그나마 지금의 분위기가 광란의 20년대 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안심입니다만, 점점 “자산소득”에 대해 우호적인 나레이션이 여기저기서 강화되는 분위기를 보면 완전히 안심할 때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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