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전편 32편
낮은 곳에서 지낸 뒤에야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 위태로움을 알아차리고
어두운 곳에 머문 뒤에야 밝은 곳에 있는 것이 너무 드러남을 알아차린다
조용하게 지낸 뒤에야 많은 활동이 너무 힘든 일임을 알게 되고
침묵에 길든 뒤에야 많은 말이 조급한 짓임을 알게 된다.
동양의 고전들, 사서삼경 공자님 말씀들이 고리타분하고 지금과 같이 바삐 움직이는 현대사회에 전혀 맞지 않은 교훈들로 채워져 있으므로 우리들에게 이런 옛 가르침들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당연히 중국의 고대시대 때의 책들이 합리주의가 결여되어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저해하는 보수적 관점에 너무 메몰되있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좌충우돌 어디로 갈지 모른 채 방황하며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미루다 어느덧 나이를 먹게 되면 탄식과 후회로 가득찬 삶에 직면해 당황하거나, 심지어 주변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증오와 분노를 일으키는 오물덩어리로 취급받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들을 어디서든 목격하게 됩니다.
채근담은 내가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욕망하는 무언가를 성취하는 성공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런 길을 제시하는 책들은 서점에 가면 수많은 자기계발서나 재테크 서적들이 발에 채일만큼 많습니다.
또한 채근담은 수많은 종교서적이나 경전들이 제시하는 것처럼 “군자”라는 유교적 인간상이 이러이러한 것이니 군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행하라는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삶을 살아가며 잘못된 처신이나 여러 실수들로 인해 맞딱뜨리게 되는 온갖 장애물들을 피하는 지혜를제시하고 그것들을 피하지 못하면 다스리는 법을, 다스리지 못하면 극복하는 법을, 극복하지 못하면 서로 타협할지언정 나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로 처신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32편(32칙)에서 다룬 안빈낙도의 삶에 대한 설명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당연히 지켜야 할 마땅한 군자의 도리라서가 아니라 공명과 부귀를 좇아 이리저리 조급하고 분주하게 움직일 때 미처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리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삶을 살면서 그동안 확고하게 지켜왔던 생각과 관점이 무너지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한 단계 성장하는 경험을 하신 분들이라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실 수 있을것입니다. 공명과 부귀를 좇는 삶을 살면서 형성되어진 많은 관점들이 부질없고 허탄한 이유는 한 번이라도 낮고 어두운 곳, 조용한 환경과 침묵하는 선택을 했을 때에는 두번 다시 그러한 옛 관점들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새로운 경험과 환경을 접하자마자 그때까지의 옛 관점이 살아남지 못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져 폐기된다면 그러한 옛 관점은 이론의 여지 없이 그릇된 관점일 것입니다. 반대로 다양한 경험과 환경에 놓여져도 여전히 변치 않고 남아있는 관점과 생각들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지혜이자 진리가 되겠죠.
때문에 굳이 유교적인 사고관이 아닌 합리주의에 입각해서라도 우리가 낮고 어두우며 조용한 곳에 머무르며 침묵에 길든 뒤에 비로서 깨닫는 것들이 진정 가치있는 것이라면 안빈낙도의 삶을 도전해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가치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