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숙계(伯仲叔季)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형제간의 서열을 정하는 단어입니다. 백(伯)은 맏아들을, 중(仲)은 둘째아들을 말하며 숙(叔)은 셋째부터 막내의 바로 위까지의 아들들을, 계(季)는 막내아들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보통 큰아버지를 백부, 작은 아버지를 숙부라 칭하는게 여기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유교가 정립되기 이전부터 제사를 굉장히 중시했고, 이 제사를 항상 장자가 맡아왔기 때문에 장자를 중히 여겼으며 세습되는 관직은 물론 재산까지 장자가 상속받았습니다.

하지만, 장자가 무능하거나 몸이 병약한 경우는 항상 둘째가 상속권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렇기에 첫째아들과 둘째아들은 경쟁심이 심하고 서로 싸우는게 빈번했습니다.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 백중지세(伯仲之勢)입니다.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하는 모습을 첫째와 둘째의 계승권 투쟁과 같다는 말이지요.

반면, 이러한 계승권에서 크게 밀리는 낮은 서열의 아들들은 그 지위와 형편이 이루 말할 데 없이 비루했습니다. 당연히 이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게 당연했고, 이런 멸시가 가득 담긴 채 파생된 말이 숙계지세(叔季之世)라는 말입니다.

계승권에서 동떨어져 하등 상관없는 셋째내 그 밑의 아들들 그리고 막내아들까지 계승권을 차지할 지 기대하며 서로 경쟁한다는 건 이미 그 집안의 유력한 아들들이 모두 죽거나 계승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있는 상황이겠죠. 그렇게 그 집안이 거의 끝장나있는 상황, 정치 도덕 풍속 따위가 아주 쇠퇴하여 끝판이 다 된 세상을 말세라는 말 대신 숙계(叔季)라 표현하며 한탄했다고 합니다. 그 중 숙세(叔世)는 쇠란(衰亂), 즉 쇠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뜻하며 더 나아가 계세(季世)는 아예 망한 세상, 즉 말세를 뜻한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치세와 난세만이 있는게 아니라 숙계지세가 존재하며, 숙계를 살아갈 때에는 치세에 필요한 올곧음과 난세에 필요한 둥글둥글한 성품이 모두 필요해진다는 말이 채근담에 언급되어 있어 그 숙계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다 고대 중국사회가 “질서와 전통”이라는 명분 아래 얼마나 사람들을 차별하고 억압해 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차별과 업압의 가장 중요한 명분이 다름아닌 “제사”에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세상을 유지하고 돌아가게 만드는 질서와 이념이라는 것도 절대적이고 영원한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당연하고 마땅하다 여겨지는 상식과 도리, 그리고 이념들에 심하게 메몰되어 이를 절대화 하거나 신성시 하지 않고 이보다 더 상위의 개념으로서 수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또한 앞으로 수천년 후를 관통하는 이치와 양심이 단지 보이지 않을 뿐 반드시 존재한다는 신념을 마음에 간직하며 사는 것을 결심하는 용기가 지금 이 순간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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