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나기를 바라는 욕심을 뿌리뽑지 못하는 이는
제후조차 가볍게 보고 맹물이나 마시며 살지라도
온전히 속된 욕망에 떨어진 사람이다.
객기를 누그러뜨리지 못하는 사람은
천하에 은택을 베풀고 만세에 이익을 끼칠지라도
끝내 쓸데없는 기량만 발휘한 사람이다.
채근담 65편
인간을 온전히 평가하기 위한 잣대로 그 사람의 행동을 보라는 충고들은 동서고금에 매우 보편적인 교훈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평가하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보들 중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 그 사람의 실제 행동과 행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예전에 어떤 말을 했는데 이후에 그 말들을 뒤집고 다른 말을 하거나, 말은 번드르르하게 했음에도 실제 행동에서는 언행일치를 보여주지 않았을 때 그 사람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건 상식이자 진리입니다. 세상의 평가는 그 사람의 행동과 업적을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사람의 의도가 아닌 행동을 훨씬 더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간혹 누군가가 선한 의도로 일으킨 행동으로 수많은 사람이 커다란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는 속담을 생각해본다면 누군가의 의도가 사람을 평가하는 데 전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명백한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의 평가와는 달리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있으킨 행동의 끝이 결국은 어떻게 되는가를 볼 때에는 그 사람의 행동만으로 평가하는 게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위대한 행동과 세상이 경탄할 성과를 만들어내어 모든 사람이 기대를 품고 지켜보지만 끝내 초라한 모습으로 퇴장하거나 황당한 이유들로 자멸하여 안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행동을 잣대로만 바라보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세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런 성공한 개인이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에 타락이나 정체에 빠지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나마 이미 그가 보여주었던 성과와 행동으로 세상이 더 나아졌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것이기에 세상 사람들은 그 사람의 행동과 성과만 보고 평가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안됩니다. 그러다 결국 안스러운 모습으로 실패하면 조롱과 멸시로 금방 돌아서게 되겠지요. 원래 세상은 그렇게 냉정하고 얄팍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만 생각하며 명성과 성과에 조급한 사람이라면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결과와 드러나는 행동에 신경을 쓰지만,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결과와 드러나는 행동 보다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다듬는 데 더 진지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에는 그 사람의 장래를 결정짓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장래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행동과 성과를 통해 크게 성공했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온전하지 못하고 욕망과 객기에 빠지게 된다면 그 사람의 운명은 결코 낙관적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건 진정한 성공이 될 수 없습니다. 잠깐의 이익과 요행에 취하지 않고 더욱 그 마음을 정진하며 스스로 돌아보는 걸 멈추지 않아야만 그 끝이 좋아질 확률을 높일 수 있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