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개 복을 아주 적게 준다면
나는 나의 덕을 두텁게 길러 복을 맞이들이리라.
하늘이 나의 몸을 힘들게 한다면
나는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먹어 몸을 도우리라.
하늘이 내게 액운을 보낸다면
나는 내가 갈 길을 시원하게 뚫어 통하게 하리라.
그렇게 한다면 하늘도 나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것이다.
채근담 91편
하늘의 뜻을 무시하거나 나 혼자 잘났다는 심보로 저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주어진 운명따윈 그냥 극복하면 되지 징징거리지 말라는 사람 천불나게 하는 망발도 결코 아닙니다.
이 글은 관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우리 앞길에 통제할 수 없는 호재나 악재가 나타날 때 그러한 행운이나 불행을 어떻게 바라보는 게 가장 타당하고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보자는 거지요.
운명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 낙관하면 내가 위대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 기뻐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량을 짜내어 힘써 인생을 개척할 생각을 못하기 쉽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선민의식에 스스로 만들어낸 올무와 함정에 걸려들어 넘어지고 빠지기 십상입니다.
반대로 나의 불운과 불행을 지켜보며 운명을 한탄하고 원망하는 사람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역량을 짜내어 닥쳐온 난관을 극복할 생각을 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는 데 시간을 쏟다보면 어느새 그 사람 스스로도 비참한 운명의 노예가 되어 운명에 저 스스로 굴복하게 됩니다. 그렇게 패배하여 굴복하는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줘어 짜내어 최선을 다해 상황을 개선하고, 덕과 품성을 갈곡 닦아 마침내 스스로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을까요?
결국 “운명”이라는 개념은 실체가 있든 없은 사람이 그러한 개념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저 모든 노력을 다하여 자신의 덕을 세우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역경을 해쳐나갈 전략과 비젼을 세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진정 운명의 장난에서 승리하여 자유로워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에 무관심하고,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하고 자신의 뜻을 세워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야말로 운명을 대하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