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가장하는 것들

타인을 철석같이 믿다가 교활한 자에게 속지 말고

제 힘만 믿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말라.

자기가 잘났다고 타인의 단점을 떠벌리지 말고

자기가 서툴다고 타인의 능력을 시기하지 말라.

채근담 121편


“믿음”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가치를 암시하는 단어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믿음이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고, 믿음이 없이는 불안과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파국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은 한 인간의 완성과 인생의 투쟁에 없어서는 안되는 부품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마치 “믿음”이라는 가치인 척 하면서 오히려 우리를 올무에 빠트리는 거짓된 개념들이 참 많습니다. 경험이 없는 젊은 분들이라면 반드시 구분하고 경계해야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걸 실패하기도 합니다. 본문의 내용들도 그러한 실수를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경계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다른 이들을 철석같이 믿다가 속지 말라고 합니다. 타인을 믿는 “믿음”이라는 단어는 진짜 믿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과 경험을 쌓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꽃밭같은 자신만의 상상 속 이상향 안에 스스로 갇혀서 나올 줄 모르는 우매함과, 삶을 그딴 식으로 살아도 나는 별 탈 없을거라는 삶과 세상에 대한 오만함과 건방짐을 숨기고 있는 가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제 힘만 믿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 권세나 육체에서 비롯되는 폭력, 그 외에 내세울만한 자신의 장점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거기에 의존하여 지혜로움을 무시하고 제 본능대로 설치고 다니겠다는 태도를 “믿음”이라는 단어로 퉁치는 건 참된 지혜를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참된 지혜는 반드시 겸손이 포함된다는 걸 잊지 말고 구별해야 합니다.

자기 잘났다고 타인의 단점을 떠벌리지 말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언제 장점들이 다 사라지고 단점만 남아 다른 이들이 자신의 못남을 떠벌리며 창피하게 될 지 모릅니다. 자신의 행복과 긍지가 언제나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는 오만함을 “믿음”이라는 단어로 호도하는 이들에게는 크나큰 대가가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착각을 감히 믿음이라 말하면 안됩니다. 믿음은 결코 오만함이 아닙니다.

자기가 서툴다고 타인의 능력을 시기하지 말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기하는 마음은 열등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열등하다고 나를 스스로 탓하는 마음이 열등감이지만, 시기하는 마음은 “내가 부당하고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믿으며 억울해 하는 꼬이고 뒤틀린 의식에서 시작합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봅시다. 다른 이들이 나보다 잘났고 더 앞서나가는 것에 신경쓸 여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잘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인내하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올무에 빠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 무엇보다 나 스스로 만드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게 가장 위험하고 위협적인 함정이며, 그 중에 가장 질이 나쁜 올무가 바로 시기심입니다.

시기심이 나와 다른 이들의 인생을 얼마나 파괴하는지는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이 다른 자들보다 불공평하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모든 거짓말 중에 가장 악날하고 치졸한 거짓말입니다. 시기질투하는 자는 이미 그 자체로 나보다 못한 환경에서 힘들어하고 나보다 배로 더 노력하는 이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거짓말을 숨쉬듯 계속 내뿜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믿음”이라는 좋은 단어에서 걸러내야 하는 수많은 거짓과 오만을 직시하고 정화시키지 않는다면, 잘못된 믿음에 빠져 우리 인생을 망치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렇게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데 내 삶은 도대체 왜 이 모양 이 꼴인가”라는 한탄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진흙탕 속에서 눈 먼 장님으로 살게 될것입니다. 잘못된 믿음에서 하루라도 빨리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빠져나오는 것이 진정한 자유로 다가가는 첩경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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