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다그치면 밝히지 않다가도
너그럽게 대하면 스스로 밝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성마르게 다그쳐서 분노를 불러일으키지 말라.
붙잡아 두면 따르지 않다가도
내버려 두면 스스로 감화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닦달하고 채근하여 고집 피우도록 부추기지 말라.
채근담 153편
위의 본문은 사람을 다룰 때 급하게 다그치고 닦달하는 것보다 너그럽게 대하고 내버려두면 스스로 감화되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교훈입니다. 현실사회에서 이렇게 마냥 너그럽게 대하고 내버려두면 정말로 사람이 안아서 감화되고 따르게 될까요?
실제 우리의 경험은 그런 이상론과 상당히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다들 지적하실거라 봅니다. 현실에서 정작 집요하게 닦달하고 몰아부쳐야 정신을 번쩍 차리고 뒤따라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며, 너그럽게 대하거나 내버려 두면 오히려 이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건방지고 게으르게 변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왜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공허한 이야기를 써놓은 것일까요? 채근담의 저자인 홍자성은 고루한 이론만 내세우는 꼰대였을까요?
하지만, 잠시 생각해본다면 본문이 말하는 것이 “사람을 다루는 방법”이라고 읽으면 안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잘 다루고 쓰기 위해 너그럽게 대하고 내버려 두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글은 “사람을 다루기 전 내가 해야 할 준비”에 대해 고민해 볼 것을 권하는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가만 내버려 두어도 사람을 이끄는 내 모습을 보고 따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감화될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을 성내게 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급하게 누군가를 다그치고 닦달하면 당연히 따르는 사람이 분노하여 따르려 들지 않을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기에 현실에서 어그러지는 경우가 생기는거지요.
따르는 사람이 스스로 감화될 만큼 나 자신이 본을 보이고 모범을 보이지 않고서 그저 너그럽게 대하며 내버려 둔다고 사람이 감화될 리는 없을테니까요. 위의 본문을 읽고 내가 해야 하는 건 사람을 다룰 때 다그치고 닦달했었는지 뿐 아니라 내가 그 사람들에게 스스로 감화될 만큼 본을 보여주었는지도 함께 돌아보는 작업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