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나 맹자, 혹은 제자백가의 성현들은 좋은 말씀을 많이 남기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말씀도 제법 있지요. 필요한 것을 취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은 바르게 수정해서 그분들이 진짜 말하고자 했던 뜻을 이어가는 것이 후학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중 제가 신조로 삼는 구절이 있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디 말해 보게.”
제갈량의 허락이 떨어졌다.
“천하야(天下也), 무적야(無適也), 무막야(無莫也).”
제갈량이 풀이했다.
“천하를 살아감에 있어 꼭 이래야 한다는 법도 없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 법도 없다. …이것이 대장군의 신조인가?”
주인공이 삼국지 시대로 환생하여 대업을 이루는 줄거리의 흔한 삼국지 전생 소설인데, 주인공의 서사가 흥미있고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읽던 중에 ”천하야(天下也), 무적야(無適也), 무막야(無莫也)”라는 고사가 나오는데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유교의 고리타분함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구절입니다.
원전은 논어편에 나오는 말로
君子之於天下也(군자지어천하야)
無適也(무적야) 無莫也(무막야) 義之與比(의지여비)
군자는 천하에 임해서 오로지 한가지만을 옳다며 꼭 이래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으며, 또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없다. 오로지 군자는 세상 일에 대하여 좋은 의리로 행할 뿐이다. 라는 구절입니다.
경전의 문구에 집착하고, 자신의 경전 해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고집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공자와 맹자를 오류가 없는 절대적인 존재로 신성시하고 유학을 학문이 아닌 종교의 영역, 즉 유교로 변질시키려는 움직임은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러한 움직임으로 생겨난 정치적 갈등에서 주인공이 꺼낸 말이 바로 이 천하야 무적야 무막야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이렇든 어디나, 언제나 비슷하게 마련인가 봅니다. 경전을 절대화하고, 문자 하나하나를 대단한 진리인 양 떠받들다 심지어는 그 안에서 부딪히는 모순과 괴리마저 어떻게든 합리화하려 시도하는 모습은 사람이 왜 책이나 경전에 얽메이고 집착하면 안되는 것인지를 훌륭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