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욥기 8장7절 말씀입니다. 점포나 음식점에 가끔씩 이 문구가 액자에 걸려있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누구라도 미약한 시작이 점점 성장하고 성공해서 더 커지고 융성하게 되기를 원하니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말씀에 기대어 성장에 대한 소망을 품고서 이 말씀을 내거는게 이상한 건 아닐겁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이 말씀을 붙잡고 성경 말씀대로 될것이라 믿고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요? 성경 구절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구절이 분명히 기록되 있으므로 이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나라와 나의 영혼에 대한 것이 아닌 물질적 성장과 세속적 성공이라 할지라도 이를 염원하고 기도하는 것은 성경적인 일이 되는 걸까요?

만약 어떤 목회자나 신앙인이 정말로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가르치고 이 말씀을 붙잡고 열심히 노력해서 세속적인 영역에서도 성공하라고 축복한다면, 이는 지극히 비성경적인 망언이 될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성장과 성공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해당 말씀을 근거로 삼아 “성경에 기록되었으니 이 말씀대로 될 수 있다”라고 누군가가 주장한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그건 극단적이고 뒤틀린 문자주의를 넘어 성경구절을 무슨 “주문(呪文)”처럼 뇌까리는 기복주의자의 언사가 될 수 있는겁니다.

해당 구절이 욥기 8장에서 어떤 전개를 통해 언급되고 있는지를 본다면 왜 이런 극단적인 비난과 비판이 제기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건넨 화자는 욥의 친구 중 수아 사람인 ‘빌닷’이라는 사람입니다. 재산과 아들들을 모두 잃고 부스럼병까지 걸려 병상에 눕게 된 욥을 두고 빌닷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주장하며 욥이 받는 고난이 하나님이 욥의 죄에 대해 내리는 심판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과응보”의 관점에서 욥의 고난은 욥이 저지른 죄 때문에 받고 있는 것이니 만육 욥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한다면 고난을 더이상 받지 않고 형통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꺼낸 이야기가 바로 “(지은 죄를 회개한다면)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속된 말로 “징징대기 전에 네가 잘못한 것부터 회개하면 다 잘되지 않겠냐”는 말인데,

  1.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문장도 아니며
  2.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있는 내용도 아니고
  3. 욥을 조롱하고 비아냥대는 말로 비칠 수도 있는 무례하고 아무런 배려도 없는 자의 망언인데다가
  4.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인과응보”라는 지극히 비성경적이고 통속적인 생각에 근거한 주장입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에 기록되었으니” 이 말씀을 근거로 믿는 누군가의 물질적 성장과 성공을 기원하는 데 이 문구가 사용되는 것이 과연 온당할까요?

우리나라 개신교계는 성경 문자 하나, 구절 하나를 모두 오류없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성경 문자 하나까지도 소중히 여기고 잘 지켜 행하겠다는 열심은 좋지만, 나뭇잎만 들여다보다 나무 전체, 넘어서 숲 전체를 전혀 보지 못한 채 전체적인 맥락이나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나 자신의 욕망과 염원에 성경 말씀을 갖다 붙히는 실수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성경 말씀이 이러이러하다고 가르치고 알려주는 걸 그대로 믿고 따라하지 말고, 성경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스스로 이해하며 대강의 큰 뜻이 무엇인지부터 분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또한 엄연히 존재하는 성경 안에서 맞지 않는 모순이나 오류, 또는 불명확한 부분들을 어떻게든 합리화하려는 집착에 빠지지 않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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