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사람은 마음 자리가 너그럽고 푸근한지라
복을 두텁게 받고 경사가 길게 이어져
하는 일마다 너그럽고 푸근한 분위기를 만든다.
비루한 사람은 성질머리가 야박하고 성마른지라
복을 박하게 받고 은택이 짧게 나타나
하는 일마다 야박하고 성마른 꼴을 만든다.
채근담 205편
옛 성현들의 이야기라는 게 생각해보면 그냥 권선징악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고리타분한 소리로 해석할 수도 있을겁니다. 사람이 사는 실제 현실에서는 착하게 살고 마음을 너그럽고 푸근하게 자리하면 정말로 하는 일마다 잘되고 복을 두텁게 받는게 아닌 경우가 많거든요. 우리가 평생 마음에 새겨두어야 하는 진리이자 삶의 원칙 같은 교훈이 사실 확률적으로만 맞는 이야기일 수 있다면 속았다는 생각에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위의 이야기에서 말하고 있는 비루한 사람, 즉 성질머리가 야박하고 성마른 사람 중에는 우리가 말하는 재벌 회장님이나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마음 씀씀이와 그 결과를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런 고리타분한 말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하루 하루 단타매매를 하는 사람들의 매매성과는 투자자의 실력과 상관없이 수익을 내거나 손실이 납니다. 그런 단타매매의 결과들만 가지고 투자자의 실력을 평가하는 건 잘못된 판단이죠. 아무리 실력 좋은 투자자라도 침체기에선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없고, 상승장에서는 실력과 상관없이 욕심 많고 용감한 투자자가 수익을 냅니다. 정말로 해당 투자자의 실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런 상승장과 하락장을 여러번 거친 이후 장기성과를 가지고 평가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 씀씀이가 정말로 우리의 인생을 다르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지, 아니면 다른 그 어떤 변수보다도 더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며칠이나 몇달의 기간을 가지고 평가해서는 안되며, 심지어는 부모님의 지원에 따라 크게 영향받는 어린 시절이나 학창시절을 근거로 해서 평가해서도 안됩니다.
정당한 평가는 우리가 사회에 발을 딛고 나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그 동안 내가 마음을 어떻게 쓰고 있었고, 그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복을 받고 있었는지를 평가해봐야 하는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보고 판단할 때도 마찬가지겠구요.
그동안 내가 너그럽고 푸근하지 못했으니 어느날 갑자기 호구라도 되는 양 갑자기 마음을 너그럽게 써본다 해서 복이 되지는 않을겁니다. 왜냐면 그렇게 마음을 쓴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당장 효과가 나올 수는 없을테니까요. 내가 이렇게 노력했는데 바뀌는 게 없다고 좌절하거나 화낼 필요는 없다는겁니다. 내가 마음을 너그럽고 푸근하게 쓰기 시작하면 당장 바뀌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일 뿐이지만, 그렇게 내가 바뀌는 것 만으로도 어느정도 보람과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소하고 작은 보람을 밑천 삼아 실제로 결과가 나오게 될 순간까지 나를 지탱하고 지지해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인내하면서 어느 한 순간의 결단과 도전을 통해 일어난 중요한 변화의 불씨가 도로 옛 습관으로 돌아가는 실태를 저지르지 않게 계속 발버둥치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변화와 성공을 맛볼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길게 봐야 이길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