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도구로 인식하지 말라

사람을 쓸 때 너무 각박하면 좋지 않으니

각박하면 정성껏 일하려 했던 사람마저 떠난다.

친구를 사귈 때 너무 넘치면 좋지 않으니

넘치게 사귀면 아첨꾼들이 다가온다.

채근담 208편


용인(用人)과 교우(交友)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나 자신이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를 선택하여 능동적으로 관계를 이루는 행위라는 점입니다. 그 목적이 자신의 직무나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면 용인이 될 것이고, 관계 그 자체를 통해 행복을 얻기 위해면 교우가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며 우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는 인간관계이지만, 그만큼 어렵고 신경써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채근담은 용인에 있어 너무 각박하지 말 것과 교우에 있어 너무 넘치지 말 것을 충고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사람을 쓸 때 언제 각박해지는가요? 또한 사람을 사귈 때 언제 넘치게 친절해지거나 집착하게 될까요? 다름아닌 사람을 쓰고 사귀려는 본연의 목적, 또는 용도에 과하게 집중할 때입니다. 사람을 쓰는 나의 목적, 나만의 사정만 중하게 생각하다 보면 자칫 내가 쓰려는 사람을 사람이 아닌 도구로 인식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효율”을 생각하고 “가성비”에 집착하니 당연히 비용을 줄일 생각으로 그 사람에게 각박해지게 되는거지요.

친구를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를 나의 위로와 행복을 목적으로 사귀는 “효용”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관계가 어그러지고, 내가 찾는 친구의 부류가 점차 아첨하는 자들로 채워지는게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부지불식간에 친구마저도 도구로 인식하게 될 때 결말은 이렇든 분명합니다.

결국, 채근담이 알려주는 핵심은 용인과 교우에서 중요한 것이 “적당한 선” 내지 “적절한 중간지점”이 아니라 “사람을 도구로 인식하지 않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적어도 용인과 교우에서 크게 낭패를 당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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