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명예를 다투고 이익을 좇으며 살도록 내버려 두고
그런 삶에 도취했다며 남들을 싸잡아 미워하지 않는다.
편안하고 담박하게 내 취향대로 살되
내 혼자 깨어 있다고 으스대지 않는다.
이것이 현상에 속박당하지도 않고 허무함에 빠지지도 않아
몸과 마음 둘 다 자유롭다는 석가모니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채근담 후집 18칙
초나라의 굴원을 생각나게 하는 내용입니다.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 굴원은 우매한 혜왕과 그의 아들 경양왕 밑에서 입바른 소리를 하다 간신 자란의 모함에 의해 관직을 잃고 추방당합니다. 그가 추방당한 사이 초나라는 진나라에 의해 계속 패배해 국운이 기울어져 위태로워지자 멱라강에서 자살을 택하는데, 그가 자살하기 전에 만난 어부와의 대화가 전해져옵니다.
“당신은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어찌 이곳에서 방랑하시나요?”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 혼자 맑으며, 뭇 사람이 모두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으니, 이로써 추방당했다오.”
어부가 다시 말하였다.
“성인은 만사에 엉키거나 얽매이지 않고 능히 세속과 어울려 옮아갈 수 있다 했습니다. 세인이 모두 탁하다면 왜 그대는 썩는 진창의 물을 더욱 어지럽게 하고 탁한 물결을 일게 하지 않으십니까? 또한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 세인이 혼몽하다면 왜 그대는 어울려 술지게미를 먹고 그 찌꺼기술이라도 마시지 않으십니까? 무슨 까닭에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행동하여 스스로가 쫓겨나게 만드셨습니까?”
그러자 굴원이 답했다.
“내가 듣기를, ‘새로이 머리를 감은 사람은 관을 털어 머리에 얹고, 새로이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고 걸친다.’라고 했소. 그러니 어찌 청결한 몸에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받을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배 속에 묻히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오. 어찌 깨끗하고 흰 내가 세속의 더러운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소?”
굴원의 자살은 유교적인 관점에서는 추앙받을만한 행동이었기에 지금까지도 굴원을 추모하는 의견들이 압도적입니다만, 그가 어부와 나누었던 대화를 되새겨보면 그야말로 자기 혼자 깨어 있다고 으스대는 말이며, 현상에 속박당해 허무함에 빠진 정신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억울하고 비분강개한 일을 당할지라도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몸과 마음 둘 다 자유롭기를 바라는 건 과분하겠지만, 최소한 내 마음 하나만이라도 어딘가 병적인 집착이나 강박에 매여있지 않고 자유로워지길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 내 상황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상태와 내 마음의 상태를 바라보며 올바로 이끌어가려 노력하는 것이 그러한 자유를 향해 걸어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