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에 숨어 편안하게 지내면
영화도 없고 욕됨도 없다.
인생길에 도리를 지켜 의롭게 살면
처지에 따라 따뜻해지거나 냉담해지는 세태를 겪지 않는다.
채근담 후집 27편
인생을 모진 세파에 휩쓸려 굴곡지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도박처럼 대박을 노리며 몰락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모험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한 리스크, 즉 위험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죠. 그렇다면 평안하고 안온한 인생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느냐로 우리의 삶의 방식이 나뉠 것입니다. 바로 그 구분이 “평탄한 삶”과 “흔들리지 않는 삶”입니다.
평탄한 삶은 세상의 파고를 피하는 삶입니다. 산중에 숨어 편안하게 지낸다는 것만 봐도 무얼 뜻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삶은 애초에 오르내리는 파고에 휩쓸릴 이유가 없기에 부귀영화도 없지만 패가망신을 당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안빈낙도의 삶이야말로 평탄한 삶의 요체라 할 수 있을겁니다.
반면 흔들리지 않는 삶은 나만의 뜻을 세우고 이를 위해 세상에 나아가 모진 풍파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삶입니다. 그러한 삶이 성공이나 부귀영화를 주기도 하지만, 사실 확률을 따지면 높을 수가 없죠. 오히려 괴롭고 외면받으며 세상의 무시와 멸시를 받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을겁니다. 예수님도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던지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하셨죠. 예수님을 따르려면 마땅히 십자가를 지고, 내 가족마저도 나와 부딪히며 나를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세운 뜻이 크고 진정 옳은 것이라면 당연히 세상이 나에게 맞서고 나를 쓰러트리려 하는게 당연합니다. 간혹 운이 좋아 내 모든 능력과 열정을 다해 그것을 극복하면 세운 뜻을 이루고 공명을 얻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뜻을 세우는 데. 성공하느냐가 아닙니다.
운이 좋아 내 처지가 좋을 때나, 운이 따르지 않아 내 처지가 곤궁하고 위태로울 때나 내가 진정 뜻을 세워 거기에 매진했거나, 도리를 어기지 않으며 살았다면 내 마음은 내 처지와 상관 없이 잔잔할 것이라는겁니다.
둘 중 어느 한 쪽이 정답인게 아니고, 둘 모두 매우 어려운 길이라는 걸 잊으면 안됩니다. 세상의 파고를 피하는 것 또한 나 자신이 충분한 경륜과 지혜를 품고 있을 때에서나 도전해 볼 수 있으며, 흔들리니 않는 삶 또한 나 자신이 “잘못된 뜻”을 세우고 있는지 항상 돌아보며 성찰하지 않으면 마지막에 가서 패가망신 뿐 아니라 자기혐오에 빠져 가장 비참한 결말을 보게 될 수 있습니다.
결국 평탄한 삶이나 흔들리지 않는 삶 모두 지혜로운 자에게만 허락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