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초탈하여 살 수 있을까?

갈대꽃 이불을 덮고

눈밭에 눕거나 구름 위에서 잠을 자도

방을 채운 밤기운을 흠뻑 얻을 수 있다.

댓잎 모양 술잔을 들고

바람을 노래하고 달빛을 희롱해도

세상을 뒤덫은 뿌연 먼지 속에서 도망칠 수 있다.

채근담 후집 39편


채근담 후집 39편의 주제는 가난해도 혼탁한 속세를 초탈하여 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채근담이 쓰여진 명나라 말기시대나 그 이전에는 이런 주장을 수긍할 수 있지만 지금에 와서도 이런 주장이 성립될 수 있는걸까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가난하면 제대로 병에 걸려 일자리를 잃어버리기 쉽고, 몸이 아파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기 십상입니다. 설령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에 걸렸어도 돈이 있으면 살아있는 시간 내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을 어느정도까지는 보장받을 수 있으나, 돈이 없으면 최소한의 존엄마저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먼 이야기가 되버리고는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의학이 극도로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을 사람들도 잘 알기 때문에 더더욱 돈을 쫓아 강팍해지고 도리어 쫓기는 삶을 사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초탈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각오와 강단의 수준이 예전보다 훨씬 더 높아진 느낌이 드니 더 슬퍼지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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