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으니
이익과 복록의 달콤한 미끼를 어찌 근심하랴?
내가 조정 진출을 다투지 않으니
벼슬살이의 아슬아슬한 위기를 어찌 두려워하랴?
채근담 후집 44편
거창하게 부귀영화라는 말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편하고 즐거운 삶을 누리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걸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거나 더 힘든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게 아니면 가지고 있는 돈을 투자하거나 심지어는 돈을 빌려서 리스크를 떠안고 투자를 하기도 하지요.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기도 하구요.
다행히 운이 좋아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면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지만, 이 또한 잠시 뿐 어느샌가 그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지게 됩니다. 거창하게 “부귀영화”가 아니라 “더 많은 돈” 정도만을 바라고 쫓기 시작해도 우리 인생은 결국 피곤해지게 됩니다. 이걸 깨닫는다면 몹시 당혹스러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죽도록 노력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게 정답일까요? 이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내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다면, 그 삶은 정체가 아니라 퇴보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직장생활을 해서 받는 월급만으로 나와 내 가족이 안정적으로 살 수 없는 현실을 마냥 외면할 수 없습니다. 해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며 물가가 상승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과 수입은 계속 녹아서 사라지는 걸 절대로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하는 게 정답일까요?
고민 중에 떠오른 건 “잔여수명”에 따라 다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겁니다. 일반적인 평균수명을 생각해볼 때 나에게 남은 시간이 10년도 남아있지 않다면 부귀영화는 커녕 당장 먹고 살만한 형편만 되더라도 불만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을겁니다. 자식들에게 더 많이 남겨주고 싶다는 건 욕심과 집착일 뿐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게 아니겠지요. 왜냐하면, 여기서 세상이 앞으로 나아가는 만큼 따라가지 않고 계속 정체되더라도 크게 뒤쳐져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조차 지킬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오기는 어려울겁니다.
반면, 젊은이들에게는 훨씬 더 적극적인 노력과 도전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4,50년 이상의 잔여수명이 예상되는 젊은이들이 발버둥 쳐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세상에 비해 엄청나게 퇴보될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이 새삼 지혜롭게 여겨집니다.
물론, 열심히 발버둥 쳐서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을 “조급함”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젊은 분들은 실패해도 괜찮은 기회와 시간이 많이 주어져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도전이 절실한 때에 도망가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이며, 멈춰서 지켜야 할 때 욕심내지 않고 자제하는 겸손일겁니다.
물론 일반론이 그렇다는 것일 뿐, 젊어서부터 어마어마한 부를 상속받는 경우라면 젊어서부터도 자족과 겸손이 절실할 것이고, 평생을 인내하며 그 때를 기다려온 강태공과 갈은 위대한 승부사라면 나이가 들어서도 결코 움츠러들지 않는 결기와 웅지가 당연히 중요하겠죠.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잘 알고 고민해왔는가가 이 어려운 난제에 답을 내줄 수 있는 열쇠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