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어있지 않은 배

몸은 매어있지 않은 배와 같으니

물에서는 흘러가고 구덩이에서는 멈추도록 내버려둔다.

마음은 재로 변한 나무와 비슷하니

칼로 베거나 향으로 바르거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채근담 후집 49편


“매어있지 않은 배”에 대한 이야기는 장자(잡편) 열어구 2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차용한 것입니다. 열어구는 열어구라는 사람을 포함해 몇몇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우화 형식으로 나열하고 있는데, 열어구라는 인물과 그의 스승인 백혼무인에 대한 우화 중에 나온 게 이 묶여있지 않은 배에 대한 비유입니다.

백혼무인이 열어구(열자)를 찾아갔는데, 많은 이들이 열어구를 추종하며 그의 말을 따르는 걸 목격합니다. 열어구는 스승인 백혼무인에게 모처럼 오셨으니 가르침을 청했으나 거절하면서 이야기를 꺼냅니다.

“네가 사람들을 따르게 한 것이 아니라, 네가 사람들로 하여금 따르지 않도록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가르치겠느냐? 남을 감동시키고 기쁘게 만드는 것은 뭔가 남과 다른 특이한 점을 겉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남을 감동시키려면 자기의 본성을 뒤흔들어야 할 것이니, 그것 또한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너와 어울리는 자들은 네게 아무것도 이야기해 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내뱉는 쓸모 없는 말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뿐이다.”

“남을 깨우쳐 주지도 못하고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는 자들과 어찌 터놓고 사귀겠느냐? 기교가 많은 자는 수고로울 것이며, 아는 것이 많은 자는 걱정이 많은 법이다. 능력이 없는 자는 오히려 추구하는 것이 없을 것이니, 배불리 먹고 유유히 노닐다가 매어 있지 않는 배처럼 두둥실 떠다니고 마음을 텅 비워 무심하고 한가롭게 거닐게 될 것이다

남과 내가 달라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고, 내가 더 뛰어나고 싶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평범하고 볼품없는 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꾸며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기쁘게 만들어서 나를 추종하게 하려는 마음을 품고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압하게 될 것입니다.

장자는 그러한 태도와 마음을 유자(儒者, 유학을 따르는 무리)의 그것으로 규정하며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매어있지 않은 배와 같은 마음입니다.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없는 무위자연의 태도로 삶을 산다면 편안히 지낼 곳에 편안히 지내며, 편안치 않은 곳에는 편안치 않게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길이 마땅히 모든 이들이 걸어가야 하는 큰 길은 아닐지 몰라도, 나 자신의 위선과 교만으로 스스로 함정에 빠져 고통받고 번뇌하는 자충수에서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대안이 되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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