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진여(自性眞如)

머리털은 빠지고 이빨은 듬성듬성하니

헛된 육신이 시들고 사라지도록 내버려 둔다.

새는 노래하고 꽃은 웃으니

본성은 진실한 모습 그대로임을 잘 알겠구나.

채근담 후집 51칙


후집 51칙의 마지막 줄에 “본성의 진실한 모습”이라는 단어는 불교용어인 자성진여(自性眞如)를 번여한 말입니다. 자성진여란, 나 자신의 본성, 즉 본래의 마음을 들여다보아 진정한 나 자신을 깨달아 앎으로서 견성성불하는 것, 즉 부처님이 되는 과정을 일컫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진여, 즉 진정한 나 자신이란 무언가 본질적인 자아나 영혼 같은걸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힌두철학과 달리 진아, 즉 아트만(atman)을 철저히 부정하는 철학입니다. 나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허깨비일 뿐이기에 깨달음은 형상이 없고 이름을 붙일 수도, 모양을 그릴 수도 없고 갈고 닦을 수도 없는 허망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 불교의 아나트만(anatman) 사상입니다.

불교신자도 아니고, 불성을 찾아 견성하여 성물하는 걸 목표로 수행하는 것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는 저이지만, 평생 붙잡고 고민하며 씨름해야 하는 나의 본성과 본질이 헛되고 줏대없이 변하는 육신에 깃들어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 자신, 한 개인으로서 헛된 육신이 나이들어 쇠약하고 병들어가는 것에 슬픔과 안타까움,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며 집착하는 태도에는 한 줌의 진실함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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