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바쁘고 괴로운 때라도 냉정한 눈길을 조금 붙여 둔다면
많은 괴로운 심경을 덜 수 있다.
아무리 몰락하여 썰렁한 때라도 뜨거운 열정을 조금 남겨 둔다면
많은 진실한 재미를 얻는다.
채근담 후집 59편
잔심이라는 단어는 무예(주로 검도)에서 쓰는 말로, 상대방을 쓰러트렸음에도 방심하지 않고 불의의 일격에 대비하며 싸움을 계속할 수 있는 경각심을 남겨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불교에서 쓰는 단어지만, 굳이 불교를 들먹이지 않아도 실생활에서 이 잔심의 가치가 보통을 훨씬 넘는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본능이 상황과 감정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본능에 지배되는 존재라는 겁니다. 내가 바쁘거나 괴로울 때 냉정한 마음을 남겨두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건 실제 그런 상황에 닥쳐보면 인정할 수 밖에 없지요. 오죽하면 “정신없이 바쁘다”, “총 맞은 것처럼 괴롭다”는 관용구가 나오겠습니까? 막상 괴로움과 분노라는 감정의 격류에 휩싸이거나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거나 위급한 상황에 놓이면 냉정한 잔심을 남겨놓는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적막하고 고독한 처지에 놓여있을 때 내 마음에 불을 당겨줄 수 있는 열정의 불씨를 조금이라도 남겨놓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로 어렵습니다. 정작 그럴 때야말로 의기소침해진 나 자신을 깨우고 불태워야 하는 때임에도 자그마한 열정을 남겨놓는 것 조차 본능적으로 쉬운 게 아닙니다.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평소에 이를 열심히 훈련해 놓는 것, 그리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끊임없이 나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하는 습관을 들여놓는 것 밖에 없겠죠.
이 세상도 변화와 순환의 연속이며, 나 자신 또한 성공과 실패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환과 변화의 존재입니다. 내 안의 변화를 알아채고, 작금의 상황을 알아채어 그러한 상황과 시기에 알맞는 마음을 항상 남겨두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지혜의 한 조각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