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치면서도 물이 있음을 잊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면서도 바람이 있음을 모른다.
그 이치를 알면 사물의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늘의 기밀을 즐길 수 있다.
채근담 후집 68편
물고기가 물을 얻어 헤엄치면서도 그것을 잊고 산다는 건, 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굳이 의식하거나 거기에 얽매이지 않더라도 물 안에서 헤엄치며 자유로운 삶을 구가할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닫게 해줍니다. 이는 장자 내편 대종사에 나오는 격언을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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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다. 밤과 낮이 일정하게 있는 것은 천연이다. 사람들이 관여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있는 것은 모두가 만물의 실정인 것이다.
그들은 특히 하늘을 아버지처럼 여기면서 몸소 그것을 사랑하고 있다. 더욱 뛰어난 것에야 어떻겠는가? 사람들은 특히 임금은 자기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몸소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물며 참된 사람에게야 어떻겠는가?
물이 마르면 물고기들은 모여 서로 물기를 뿜어주고 서로를 물거품으로 적셔준다. 그러나 강물이나 호수 속에서 서로를 잊고 있던 때보다 못하다.
요임금을 기리고 걸왕을 비난하는 것은 차라리 두 사람을 모두 잊고 올바른 도로 동화되는 것만 못하다.
대지는 우리에게 형체를 부여하고 삶을 주어 우리를 고생스럽게 하고 있다. 늙게 만듦으로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고, 죽음으로써 우리를 쉬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삶은 잘사는 것은 곧 자기의 죽음을 잘 맞이하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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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장자가 말하려는 것은 관여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길흉화복의 변화와 죽음마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 속에서 물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을 즐기며 신경쓰는 것과 같이 운명이 나에게 부여하는 것들을 의식하지 않고,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잘 살아가는 것에 집중한다면 물 속에서 자유롭게 해엄치는 물고기, 날아다니는 새들과 같은 자유와 행복을 얻을 것이라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