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잎이 져 뿌리로 돌아간 뒤에야
꽃과 꽃받침, 가지와 잎사귀가 헛된 영화였음을 알게 된다.
인생사는 관 뚜껑을 덮고 난 뒤에야
아들과 딸, 보석과 비단이 다 쓸데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채근담 후집 78편
사람이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스스로를 계속 속여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 “내가 악착같이 일을 하고 아둥바둥 돈을 모으고 권력을 키워 가문을 일으켜세워야 내 후손들이 나를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것만큼 보람찬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등등,,,
종족의 보존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살아있는 동안 죽어라 일하고, 경쟁해서 다른 사람을 넘어서고, 재산과 권력을 쌓아 후대까지 영화를 이어가려는 본능은 사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본능에 새겨진 유전자의 명령에 순응했을 때 내릴 수 있는 결론과, 자아를 가진 나 자신이라는 한 인격체의 입장에서 이 모든 자연의 흐름을 한 눈에 담아 통찰했을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달라질 수 밖에 없겠지요.
잎이 져 뿌리로 돌아가는 나무의 순환처럼, 죽고 난 뒤에야 살았을 때 누린 것이 아무리 대단해봐야 결국에는 헛된 영화였음을 깨닫게 된다면, 솔로몬이 썼다고 알려진 전도서의 내용처럼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허무함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바쁘고 경황없이 돌아가는 삶에 지쳐있다 문득 관 뚜껑이 덮이고 난 뒤의 일을 떠올리게 되었을 때 오직 허무함과 절망만을 느끼는 삶이라면 얼마나 슬프고 괴롭겠습니까? 우리는 그러한 허망함과 좌절을 느끼기 전에 우리의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신앙인이라면 신의 품에 귀의함을 믿을수도 있겠지만, 신앙인이 아니라 해도 우리가 나왔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 있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