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기 이전에는 어떤 생김새였을지 한번 생각해보고
죽은 뒤에는 어떤 골을 하고 있을지 또 생각해 보라.
그러면 온갖 생각은 타 버린 재처럼 식고
본성 하나만이 고요히 남아
자연스레 물위로 벗어나 태초의 세계에 노닐리라.
채근담 후집 98편
종교나 철학을 고민해본 적이 없더라도, 죽음이라는 경계를 마냥 두려움과 불안감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깊게 생각해보는 것은 충분히 가치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삶을 얻어 살아가는 시간의 이전의 나를 상상해보고, 죽고 난 다음의 모습이 어떤 꼴을 하고 있을지를 생각해본다면 결국 어떤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걸까요? 채근담은 생각 끝에 얻어진 바로 그 결론을 “본성”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본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나의 삶의 이전과 이후를 생각하다보면, 결국은 불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나 자신의 부재”, 내지 나 자신이라는 “인지의 부재”에 다다르게 되면서 그 때에 비로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인식하게 되는지를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삶의 경계 밖으로 나오게 된다면 나는 허무함이나 괴로움, 억울함, 불안함 같은 것을 느끼게 될까요? 하지만, 이러한 느낌은 오직 삶에서 죽음으로 바뀌는 경계의 한순간에 국한해서 일어나게 될 것들입니다.
그러한 경계를 지나서 온전히 삶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다면 그러한 것들을 느낄 이유가 없겠지요. 만약 유물론이 진실이라 가정한다면 애초에 나 자신이라는 인식과 감정 조차 일어나지 않을테니 그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느끼게 될 당혹스러운 감정을 계속해서 느낄 이유가 없을것이며, 반대로 유신론이 진실이라 가정한다면 그러한 잠깐의 경계를 넘어서도 계속해서 그런 감정을 느낄 이유도, 그럴 필요도 존재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삶의 경계 안쪽에 존재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경계 저 너머를 떠올리며 느끼게 되는 나의 “본성”이라는 건 결국 겸손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경계 안쪽에서 보이지 않고 심지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저편 너머를 생각할 때 결국에는 겸손함과 온유함만이 남아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채근하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여 똑똑히 직시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의 삶 너머, 죽음 이후를 항상 생각하며 성찰하는 행위는 우리의 삶을 위해서도 정말 중요한 시도가 될것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