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에서 손을 놓다 – 현애살수

풍악이 한창 무르익을 때 옷깃을 떨치고 영영 속세를 뜨다니

깍아지른 절벽에서 잡았던 손을 놓을 줄 아는 저 달인이 부럽다.

통금이 시작돼 하루가 끝나 가건만 태연히 밤길을 서성대다니

괴로움의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는 저 속물이 딱하다.

채근담 후집 104편


현애살수(懸崖撒手),, 불교에서 회자되는 화두로서 송나라 선승 야부도천(冶夫道川)의 선시(偈頌)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실족하여 낭떠러지에서 미끄러러지던 도중 나무뿌리를 겨우 잡고 매달려 있게 되었습니다. 대롱대롱 매달려있으니 발 밑을 볼 수 없지만, 천길 낭떠러지로 생각해 죽자고 나무뿌리를 붙잡고 있는데, 독사 한마리가 나무뿌리를 타고 내려와 나를 물어죽이려 합니다. 가만히 매달려 있어도 독사에게 물려 죽고, 뱀을 피해 나무뿌리를 놓아버려도 절벽에 떨어져 죽을 판인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답이겠습니까?

나무뿌리를 타고 내려오는 독사에 관한 이야기는 좀 더 후대에 각색된 부분이지만, 굳이 독사가 아니라도 이런 경우 살아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나무뿌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는겁니다. 어차피 가파른 절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게 아니라면 계속 나무뿌리를 붙잡고 버티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내 발 밑 어디 쯤에 바닥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살아날 확률을“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절대 살 수 없다”보다는 훨씬 더 희망적이니까요.

하지만, 당장 내 눈 앞에 공포감이 내 이성을 마비시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힘이 빠질 때까지 나무뿌리를 붙잡을 수 밖에 없다면 “저 속물이 딱하다”는 말에 수긍할 수 밖에 없을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참된 지혜라는 채근담의 저자 홍자성의 일갈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에는 위급하게 됨을 알면서도 려한 속세의 영광과 이득을 좇아 서성대는 것을 그만두지 못한다면, 괴로움의 바다에 계속 몸을 담그고 있으면서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결단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그 자체가 아닌가를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한다는겁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