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줄도 톱처럼 쓸면 나무를 자르고
물방울도 쌓이면 바위를 뚫나니
도를 배우는 사람은 힘써 찾으려고 노력하라.
물이 모이면 도랑을 이루고
참외가 익으면 꼭지가 떨어지나니
도를 얻으려는 사람은 하늘의 작용에 온전히 맡겨라,
채근담 후집 110편
도를 배우는 사람은 힘써 찾으려고 노력하라고 해놓고, 곧바로 도를 얻으려는 사람은 하늘의 작용에 온전히 맡기라고 하니 혼란스럽습니다. 도를 배우는 것은 무엇이고, 도를 얻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도를 배우는 것, 즉 학도(學道)와 도를 얻는 것인 득도(得道)를 따루 나누어 구분하는 것은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 모든 동양사상에서 공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입니다. 유교에서는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학도라 하지만, 도교에서는 공부하는 것이 아닌 세상의 고정관념과 지식을 버리는 과정을 학도로 여깁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거나 신령함을 회복하다가 종국에 가서는 유교는 군자나 성인이 되는 것이 득도이며 공자는 이를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라 하여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자유로운 경지로 설명합니다. 도교는 물아일체를 이루거나 좌망(坐忘)에 다다라서 는 것이 궁극적인 득도라 여깁니다.
불교에서는 해오(解悟)와 증오(證悟)의 개념을 학도와 득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해오는 공부와 수행을 통해 머리로 깨달음을 이해하는 단계이며, 증오는 그저 깨달음을 얻는 증득(證得)을 의미하며, 다른 사람이 가르치거나 알려준다고 해도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자증자오(自證自悟)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유교든 불교든 도교든 공통적인 주장은 궁극적인 깨달음에 다다르기 위해선 사람의 노력이나 이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겁니다. 이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이들은 실제 그런 경지가 존재하지도 않거나 거짓된 경지임에도 사람들을 미혹해서 자기들 세를 불리기 위해 거짓주장을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논리적으로 본다면 유교나 불교, 도교의 궁극적인 경지이자 진리가 모두 같은 형태일 수는 없기 때문에 셋 중 어느 하나, 아니면 셋 모두에서 주장하는 궁극적인 경지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거짓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굳이 그러한 궁극의 경지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각각의 영역에서 부단히 힘써 배우고 수련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 만으로도 나 자신을 끊임없이 채근하며 발전시킬 수 있으며, 내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유익을 줄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하고 뿌듯한 성취일 뿐 아니라, 그 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를 배우는 것과 도를 얻는 것 사이에서 고민을 할 이유가 없죠. 심지어는 유교니 불교니 하는 다양한 종교나 철학 중 무엇을 따르느냐로 고민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고민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고 고치려 노력하며, 그게 잘 안될 경우에 어떤 지혜가 도움이 되는지 열심히 알아보고 궁구하는 것 부터 시작하는게 오히려 누군가의 권유나 소개로 특정 종교, 그 중에서도 세세하게 갈라진 특정 분파나 교단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답습하는 것보다 더 나은 출발일 수도 있는겁니다.
일단은 어제보다 더 나아진 나를 지향하고, 내 주변에 더 선한 영향을 미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하는 각오와 이를 위해 기꺼이 다른 이들의 지혜와 경험을 경청하며 배울 자세 이 두가지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넉넉하고 충분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