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질서를 깨우쳐라

꽃을 가꾸고 대나무를 심으며

학을 가까이하고 물고기를 보는 행위에서도

스스로 깨우치는 공부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

만약 한갓되이 눈앞의 풍경에만 깊이 빠져

사물의 멋만을 가까이하여 희롱한다면

이는 우리 유교의 귀로 듣고 입으로 나가는 공부나

불교의 고지식한 좌선에 불과하다.

무슨 아름다운 정취가 있으리오!

채근담 후집 125편


사물을 보고 곧바로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감상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사물을 즉각적으로 느끼고 감상하다보면 결국 사물의 외면에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깨우침에 이르기까지 궁리하고 공부하는 것이 더해져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피상적인 공부에 머무른다면 유교도, 불교도 다 허탄하고 안타까운 경지에서 나아가지 못하게 될 것임은 당연합니다. 날이 갈수록 새로운 학문이 생겨나고 원래 하나였던 학문도 한없이 분화되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저도 요즘 와서 이걸 절실히 깨닫고 있는게, 나름 수십년을 공부하고 있으며, 생업으로 삼고 있는 영상의학에도 부족함을 심각하게 느끼는데, 그 근원이 바로 내면의 질서를 궁리하고 깊게 공부하려는 태도의 결여에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하니 많이 부끄럽고, 반성과 결심을 다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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