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국제 부채위기의 원인

  1. 1981년에 세 개 대륙의 11개 국가가 외채 재협상을 요구했습니다.
  2. 1982년 8월12일 멕시코 정부는 미국에 모라토리움 선언을 합니다. 당장은 3억달러, 내년까지20억달러의 지급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습니다.
  3. 멕시코의 모라토리움 선언으로 전세계 은행이 대출을 거둬가며 같은 해인 1982년 11월 브라질이 구제금융 신청
  4. 포클랜드전쟁에 패전한 아르헨티나, 1983년 1월 IMF 및 은행들에게 구제금융 신청, 그러나 같은 해 말에 모라토리움 신청
  5. 곧바로 터키, 인도네시아, 폴란드 등 구제금융 신청
  6. 1982년 말 외채를 체납중인 국가 40개국

결국,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브라질이건,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던 아르헨티나건 할것 없이 대부분의 신흥국들은 향후 10년동안 엄청난 희생을 치루며 경제가 쪼그라들었으며, 이들 나라가 일본보다 먼저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이라는 타이틀을 걸게 됩니다. 페루와 필리핀의 평균소득이 1982년 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에는 이후 20년이 걸립니다.

이런 신흥국의 “잃어버린 10년”을 만든 원인이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직전에 폴 볼커 연준의장이 기준금리를 15% 이상 올려버린 초긴축정책으로 꼽습니다. 볼커 의장이 긴축정책을 펴기 이전까지 미국은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에 경기침체가 합쳐진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스태그플레이션을 끊기 위해서는 그만큼 충격적인 조치가 필요했을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충격요법의 대가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감수하게 되었던거지요.

하지만, 이러한 신흥국의 잃어버린 10년을 미국의 고금리정책에서 찾는 건 결과를 가지고 원인이라 강변하는 오류를 범하게 될 수 있습니다. 애초에 볼커 의장이 그러한 강경책을 쓸수밖에 없었던 원인인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왜 일어난 것인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 원인은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전제로 합의했던 브래튼 우즈협약을 깨트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실제 스토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금태환을 거부했다고 해서 그게 곧바로 달러가치의 폭락으로 이어졌던게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전세계 금융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미국의 발언권을 거슬리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작용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됩니다.

오히려 금태환 거부조치 이후 달러의 금태환 보증에 기반했던 국제무역이 크게 쪼그라들고, 유럽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파운드블록과 북미와 남미를 중심으로 달러블록으로 전세계 경제가 블록화되버리면서 신흥국들의 경제가 파탄을 향해 달려가게 됩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경제의 블록화, 즉 블록경제가 부활하면서 경제적 약자에 해당하는 신흥국들의 수출길이 좁아들었기 때문입니다.

블록경제라는 용어가 맨 처음 사용되던 건 대공황 이후였습니다. 1차대전 후 전쟁피해를 입지 않아 세계경제를 먹여살리다시피 했던 미국이 대공황으로 금본위제를 더이상 유지하지 못해 달러화가 폭락하면서 기축통화의 지위가 흔들리자, 제국들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 블록을 형성하고 다른 블록들에게 배타적인 보호무역정책을 밀어부치기 시작했습니다. 1932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영제국경제회의가 열려 영국의 식민지와 영향권 안에 있는 국가들 사이에 특혜관세가 설립되면서 파운드 블록, 달러 블록, 마르크 블록, 프랑 블록 등 차례차례 배타적인 경제블록들로 나뉘어져 “세계화”라는 흐름이 다시한번 좌절되었던 상황이 1971년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 거부로 인해 다시한번 반복된 겁니다.

그렇게 시장이 몇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쪼그라들면, 교역규모가 이전의 몇분의 일로 줄어들게 되고,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체력이 약한 신흥국부터 외화획득을 할 수 있는 길이 막히면서 만성 적자와 부채위기, 종국적으로 금융위기에 빠질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금본위제로 상징되는 국제적인 약속과 신용을 저버리고 자기만 살기 위한 정책으로 과거회귀를 할 때마다 그 결과는 세계교역량의 급감과 여러 곳의 경제적 참상으로 귀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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