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이 균형을 이루면서 자기조정기능을 내재한 경제시스템을 창출하면, 이 시스템이 스스로 상품의 가격과 이자율을 조절하고, 재화의 끊임없는 흐름을 만들며, 정부의 개입이 없이도 부를 생성한다는 개념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또다른 맥락에서 자유시장이라는 말은 특정한 유형의 경제적 자유나 특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유무역지대 안에서 관세를 더욱 낮게 낼 권리라든가 심지어 독점행위까지도 인정받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유시장은 낮은 조세 그리고 정부의 경제개입을 제한한다는 말과 동의어가 된다.
밀턴 프리드먼은 자신의 저작에서 “자유시장” 사상에 대해 가장 익숙한 정의를 내놓았다. 그는 자신의 저작에서 이를 경제문제에서 일체의 정부활동이 사라진 상태, 혹은 좀 더 폭넓게 말해서 “사람들의 행복추구”에서 법의 간섭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그의 어록 중에는 “자유시장에 반대하는 대다수 논리의 근저에는 자유 그 자체에 대한 신념 부족이 깔려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모든 것을 단 하나의 논리로 풀어내는 프리드먼의 시스템에서 보면, 시장은 아무런 국가의 개입이 없이 오로지 개인, 기업, 주주 들의 다양한 욕망과 선택으로 추동되는 민간부문의 수요 및 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자유시장은 확실한 어떤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황당한 미스테리에 가깝다는 것이 입증된 바 있다.
미국 공화당의 경우 깜짝 놀랄만한 반전을 겪고 난 뒤 이제는 무역 관세를 지지하고 있으며, 영국 보수당은 유럽연합의 자유무역지대를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조세와 사회지출을 늘린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온 세계가 자유무역과 규제 없는 국제시장을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역할은 오히려 권위주의체제 중국의 공산당 수반인 시진핑 주석에게 떨어지게 됐다. 이 외에도 프리드먼의 주장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예들은 무수히 많다.
프리드먼은 그저 허수아비가 아니다. 그가 설파한 “정통파” 자유시장 담론은 여전히 대다수 기업의 이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며, 심지어 국가자금으로 운영되는 경영대학원들도 마찬가지다. 트리드먼의 정통파 교리는 지금도 미국 상공회의소가 떠받드는 신앙이다. 그 결과, 미국은 물론 자유주의경제를 가진 다른 민주주의국가들에서도 자유시장이라는 사상을 사람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이용한다는 걸 간과할 때가 많다.
우리는 자유시장을 부의 창출이나 혁신이라는 주제와 관련한 논의에서만 언급한다. 정작 현실에서는 탈규제의 결과로 부채, 파산, 사기가 위험한 수준으로 올라가 공황이 덮치고, 그 다음에는 정부의 구제금융이 일어나고, 또다시
독점기업들, 부의 불평등, 정치적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상에는 걸출한 학자가 혁신적인 이론을 주창하면서 그 이론을 중심으로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나뉘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이작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그랬고, 교회의 탄압에 맞서 꿋꿋이 지동설을 주장했던 과학자들이 그랬으며, 찰스 다윈이 그랬죠. 경제학에는 아담 스미스나 케인즈, 최근에는 신자유주의를 개척한 밀턴 프리드먼이 그렇습니다. 시대를 새롭게 정의하는 위대한 통찰들은 언제나 후대의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통찰과 아이디어를 아이디어 자체로 보지 않고 절대화시키거나, 하나의 종교로 탈바꿈시키려는 시도들입니다. 아무리 혁신적이고 위대한 통찰을 이끌어낸 이들이라도 일단은 사람입니다. 이들도 그때까지의 불완전했던 시대상과 모순에 발을 내딛고서 그 안에서 열심히 발버둥치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이들의 생각들이 절대진리일 수도 없고, 이들의 주장이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서도 안되겠지만,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들의 생각을 절대화하려는 시도는 시대를 막론하고 끊이지 않았습니다.
더욱 한심하고 추악한 일은 그러한 위대한 사상과 통찰을 전하는 와중에 그러한 절대화와 종교화를 시도하는 자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들은 조용히 언급되지 않고 침묵을 지키거나 아예 왜곡되고 조작되기까지 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위대했던 이들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겠다면서 엄하게 역사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뒤틀고 지우려는 시도들만큼 추악한 시도들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자주 벌어졌는지를 생각한다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그러고보면, 지난 1980년대부터 40년간 전세계를 풍미하던 신자유주의를 종교화하기 위해 아담 스미스나 밀턴 프리드먼의 생각과 주장들을 얼마나 짜집기해왔고, 중상주의라는 경제사상을 어떤 식으로 폄훼하고 왜곡해왔는지에 대해 엄정한 역사가의 시선에 의해 조목조목 짚어가다보면 그 추악함에 절로 토악질이 나올 정도입니다.
실상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관성에 이끌리듯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사조의 절대화와 신격화의 잔재들이 여전히 거대하다는 점을 깨닫게 될 때, 남아있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이 책에서 언급하듯 자유시장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의 맥을 이어가는 이들보다 훨씬 심하게 신격화되고 종교화되었다가 심지어 수많은 사람들을 굶겨 죽이기까지 했던 마르크스주의나 그 계보를 잇는 이른바 “대안”경제학 쪽의 신화들의 잔재들 또한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될것입니다.
이 세상을 망치는 자들은 좌파나 우파, 진보나 보수같은 특정한 파벌이나 진영이 아니라, 그런 각각의 진영들 내부에서 과학적인 사고와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고 자신들의 우상을 비판없이 떠받들라는 종교팔이를 하는 이른바 “정통파”라 자임하는 교조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팩트와 현실에 따라 이론을 수정하고 정상적인 피드백을 거치지 않고 현실을 왜곡해 해석하면서 프리드먼은 틀리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오류는 없다, 이런 식으로 뇌까리는 자들이 세상을 지금 이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