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치 미쓰히데와 메타인지

우리나라 역사가 아니어도,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했던 오다 노부나가가 패업을 이루기 직전 자신의 수하 장수인 이케치 미쓰히데에게 배신을 당해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던 일화는 워낙에 유명해서 다들 알고 있을겁니다. 이른바 혼노지의 변입니다.

당시는 전국시대로 주군과 부하의 관계가 유교적인 절대복종보다는 계약에 가까웠던 시대입니다만, 어디까지나 주군이 능력이 없거나 제대로 된 대접을 베풀지 않았을 때 부하들이 무조건적인 충성을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고, 부하가 마음대로 주군에게 칼을 들이대는게 허용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당시의 오다 노부나가는 주변의 모든 군웅들을 압도하고 천하통일의 일보 직전이었으므로, 오다 노부나가를 향한 모반은 설령 성공하더라도 일본 전체의 공공의 적이 되는 자충수였습니다.

실제로 이케치 미쓰히데가 오다 노부나가를 죽인 후 그가 확보했던 병력은 소수였으며, 정치적으로 그를 지지해줄 사람도 전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이케치 미쓰히데는 원래 오다 노부나가 밑에 있는 부하들 중 정치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장수였으며, 오다 노부나가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일 정도로 지명도가 높았으나, 정작 그가 오다 노부나가를 죽이자 아무도 그에게 호응하지 않았다는 건, 그의 모반이 아무런 준비 없이 이뤄진 즉흥적인 돌발행동에 가까웠다는 걸 의미합니다.

원래 이케치 미쓰히데는 보수적이고 자존심이 강했다고 알려졌지만, 성격이 조용하고 전투도 지략을 사용하는 지장이었기 때문에 이런 즉흥적인 모반을 후대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여러가지 가설들이 혼란스럽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천하를 노리고 있었다는 야망설이나, 토사구팽을 당할것 같은 조짐에 초조해 있었다거나, 심지어는 배후에 다른 세력이 있었을 거라는 등,,,

이케치 미쓰히데 본인이 모반의 이유를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혀 알려주지 않은 채 불과 13일만에 히데요시군에 패해 사망했기 때문에, 모반의 진짜 동기를 우리가 확인할 수는 없으며, 굳이 어떤 동기로 모반을 했는지를 알려고 집착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그러한 절박한 동기가 있다는 것과, 거기에서 실제로 모반을 실행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겁니다.

평소의 그는 보수적일단 저지르고 보는 급한 성격이 아니었고,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설령 모반에 성공했다 해도 결국은 그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는 거지요. 사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다름아닌 오다 노부나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심을 했던 거구요. 그의 평소대로의, 상식적인 심리상태에서는 설령 어떤 절박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한들 감당해야 할 리스크 때문에 모반을 시도할 수 없었던 겁니다.

역설적인 건 그렇게 상식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만큼 어마어마한 리스크가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이를 감수하고 부득불 모반을 저지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역사적으로는 굉장히 흔한 패턴으로 반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를 판 갸롯 유다, 박정희를 사살한 김재규, 항우를 배신하고 유방에 붙은 분봉왕들, 시저를 배신한 브루투스 등등,,,

설명하기 어렵지만 반복되는 인간행동의 패턴은 논리나 전략이 아닌 심리학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평소 그렇게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행동했든 이케치 미쓰히데가 평소의 행동양식과 정반대되는 돌발행동을 벌였던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핵심측근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모반행동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다름아닌 리더와 핵심측근이 세를 모으는 과정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촌구석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던 때의 이케치 미쓰히데는 전쟁에 이겨서 영토를 넓히고 공을 쌓을 궁리 말고는 할 게 없었을겁니다. 촌구석 오다 노부나가 밑에서 그를 배신해봐야 얻을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천하통일을 앞에 둔 오다노부나가가 방심을 한 채(얼마나 방심을 했느냐면 후계자인 오다 노부타다도 함께 교토에 왔다 변을 당합니다.) 그의 영지에 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설령 모반에 성공해도 어마어마한 리스크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현실이 눈에 들어올테지만,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방심의 흔적이나 기회가 보인다면 그러한 리스크보다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가 더 혹할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평상시 이성적인 태도가 유지되는 때보다 심리적으로 초조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훨씬 감정적이고 돌발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성격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라는 게 원래 그렇게 되어있는거지요. 그렇지 않아도 무언가 몰리고 절박해진 상황에서 평소에는 있지도 않던 주군의 방심과 같은 기회가 보인다면 사람은 그것을 “내가 왕이 될 운명”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평소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던 사람일수록 이러한 반전의 강도는 더 강해지기 쉽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오와리의 바보”로 불리우던 시골 촌구석의 작은 땅의 영주였습니다. 바로 옆에는 강대국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 강대국의 영주인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오다 노부나가를 자신이 교토로 입성하기 위해 거쳐가야 할 작은 땅의 애송이 정도로 여기고 오다 노부나가의 10배의 대군을 몰고 와서 항복을 권유했습니다. 당시 누구도 항복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오다 노부나가는 소수의 부하들을 데리고 순식간에 이마가와의 목을 쳐 대승을 거두며 전국에 이름을 날렸습니다(오케하자마 전투).

이후에도 오다 노부나가는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도전을 반복하며 세력을 확장했는데, 순전히 운이 좋아서 살아남거나 절대적인 우위에 있던 강적이 숙적이 알아서 사망해줘서 패퇴하는 기적적인 행운이 연달아 따라준 끝에 전국통일의 목전에 다다른 것을 이케치 미쓰히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던 사람입니다.

무모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리스크를 감당하는 과단성은 세상을 놀라게 하며 많은 이들을 감복시켜 따르게 만듭니다. 천하를 통일하고 뭇 경쟁자들을 압도해 권력의 정점에 올라선 이들 중에 그러한 과단성이 결여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이케치 미쓰히데도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의 그러한 과단성이 어떤 성공을 가져다주었는지를 곁에서 목격했던 사람이었으니, 우연히 주어지는 “기회”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현실적인 리스크를 과소평가하도록 스스로를 속이며 무모함을 과단성으로, 신중함을 우유부단함으로 왜곡시키며 자기합리화를 했을것입니다.

사실 냉정하게 본다면, 상식을 뛰어넘는 과단성이 그 자체만으로 성공의 지름길이 된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당시 일본 전국시대에는 오다 노부나가 한 사람만이 그런 과단성을 가지고 무모한 도전을 거듭했던 게 아닙니다. 백년 넘게 이어진 전국시대 동안 수십 수백의 영주들이 오다 노부나가 못지 않은 과단성과 무모함으로 무장한 채 군사적인 확장을 도모했지만, 이들 모두 성공하지 못했거든요. 과단성이라는 품성은 가끔씩 예기치 않은 기적같은 승리를 가져다주지만, 꾸준히 성장을 지속하고 자원을 확보하며 적재적소에 사람을 바치하며 국가운용의 효율성을 담보해주는 리더의 품성은 오히려 신중함과 겸손함에서 나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도, 초기에 경제성장과 관련된 일련의 개혁조치가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러한 경제적 개혁조치가 없었다면 당시 최대 영토와 생산력을 자랑하던 다케다 신겐 같은 대영주와 비등비등하게 붙어볼 엄두도 못 냈을겁니다. 전투는 과단성과 무모함이 통하는 영역이지만, 개혁은 과단성이나 무모함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주도면밀하고 세심한 접근이 결여된 개혁은 항상 파괴적인 결말을 가져오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오다 노부나가의 과단성이 온전히 그의 천하제패에 기여한 것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극적인 상황에서 마음의 틈을 만들어 방심으로 성공의 목전에서 좌절하게 만든 패인으로 신중함의 부족을 꼽아야 정확한 분석이 될 것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인간을 성공으로 이끌어내는 건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과단성을 발휘할 줄 알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과제에서 귀를 열어 다른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스스로도 깊게 고민할 줄 알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방심하지 않는 주도면밀함을 유지할 줄 아는 품성, 무엇보다도 내 감정과 상화에 따라 얼마든지 내가 나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심리적 함정을 유의하고 자신의 판단을 현실과 객관에서 벗어나지 않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기인지, 이른바 메타인지와 같은 다양한 품성의 조화와 통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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