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욕(私慾)을 품으면

사람이 한순간 사욕을 품어 탐하면

바로 강직함이 물러 터져 유약해지고

지혜로움이 꽉 막혀 아둔해지며

은혜로움이 변하여 잔혹해지고

결백함이 더러움에 물들어 한평생 지켜 온 인품을 망가뜨린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탐내지 않음을 보배로 삼아 한세상을 초연하게 살았다.

채근담 79편


요즘 투자한 상품이 손실이 크게 났는데 돌이켜보면 조급함과 탐욕, 그리고 지나친 확신이 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저라는 한 개인의 성격적인 결함이라 여기며 탄식만 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닙니다. 항상 문제를 깨닫게 되었다면 해결책을 생각하고 이를 굳게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실 사욕, 즉 사사로운 욕심이라는 걸 사전적인 뜻으로 “나 자신만을 위한 욕심”으로 번역하는 건 정확한 의미전달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세상은 자기 자신을 위한 욕심을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사회에 매우 필요한 개인의 욕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욕심의 궁극적인 목적이 개인의 행복에 있다는 것이 부당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타인의 입장을 배제하고 나 자신의 물질적 욕심만 채우는 것은 배격되어 마땅한데, 이러한 마음을 부르는 단어는 따로 있지요. 다름 아닌 “이기심”이고, 이는 사욕과 다르게 다루어져야 하는 개념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사욕은 욕심의 목적이 아닌 욕심의 방식에 대한 개념이라고 보는게 더 정확합니다. 욕심의 목적이 타인을 배제하고 나자신만을 위한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앞서 설명했듯 “이기심”이라 하는게 맞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이 곧바로 인간을 망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잘못된 방식”으로 무언가를 탐하고 욕심을 내는 것이 더 위험합니다.

위에 언급된 채근담 내용을 보면 무엇이 잘모된 방식의 욕망과 탐욕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사람을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소중하고 선한 성품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인간의 욕망이 자기에게 족한 분깃을 넘어 다른 좋은 성품들을 파괴하고 쫄아들게 만들 정도로 비대해지게 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렇게 욕심이 인간의 다른 성품들을 오염시키거나 파괴하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일들은 항상 그 사람이 주의하지 않고 돌아보며 반성하지 않는 동안에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옛 성현은 탐내지 않음을 보배로 삼았다고 하는 말은 정말로 탐심 자체를 없애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성품과 마음을 경계하고 돌아보는 것을 그치지 않으며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의 욕심이 나의 강직함을 물러지지 않도록, 나의 지혜로움이 아둔함으로 바뀌게 하지 않도록, 내가 하루라도 인색하고 타인에게 잔혹해지지 않도록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자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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