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io brevior potior

제목의 라틴어는 “the shorter reading is stronger”라는 뜻으로, 고대 문헌의 필사자들이 텍스트를 옮겨 적을 때 내용을 삭제하기보다는,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덧붙이거나 모호한 부분을 명확하게 하려고 첨삭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가설을 말하는 문장입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판본이 존재할 경우, 더 짧은 문장이 원본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실제로 구약성경의 여러 판본들 중 어떤 판본이 원본에 더 가까운 텍스트인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근거가 되는 원칙이며, 유투브 영상에서 설명하고 있는것처럼 전후사정을 중언부언 설명하느라 텍스트가 길어진 판본이 원본에서 더 멀어지는 후대의 텍스트인 것이죠.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레김의 아들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기술하고 있는 사무엘하 21장의 기록이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기술하는 사무엘상 17장의 기록보다 훨씬 원본에 가까운 기술이라고 보는 근거는 사무엘상 17장을 전후한 기록들의 맥락이 매우 혼란스럽고 간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는 기술 전후로 시간 흐름도 뒤죽박죽이고, 첨삭의 흔적이 다수 발견되는걸로 봐서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는 기술이 훨씬 더 원본, 또는 원래의 전승에 가까운 기술이라는거지요.

하지만,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 신앙을 포교하려다보니 이러한 아이러니를 견디지 못하고 없는 사실을 만들거나 첨삭해서 자연스러워보이게 하려는 작업은 비교적 최근에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다름아닌 “엘하난은 다윗의 부하로,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를 죽였다”라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영어판본에서는 엘하난이 “골리앗의 동생”을 죽였다라고 써져있고, 한글판 개역성경에서는 영어판에도 나오지 않는 “라흐미”라는 이름까지 버젓이 실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지만, 실제 히브리어판 사무엘하 21장에는 라흐미라는 인물도 나오지 않고, 골리앗을 동생이라는 말도 말도 안나와있거든요.

역사적으로 “the shorter reading is stronger”의 원칙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사실, 정말 성경을 필사한 사람이 정말로 정직한 사람이라면 모호한 것은 모호한 그대로, 모순된 것은 모순된 그대로, 잘 모르겠는 건 모르는 그대로 필사하여 전승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습니다만, 성경이라는 텍스트에 정치적인 권위를 만들어서 민중들 통제하려는 권력자들의 입장에선 절대 그럴 수 없는 일이었겠죠.

어찌되었건 교단의 일부에서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일점일획이라도 오류가 있을 수 없다.”라는 주장을 우리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건 맞다고, 사실이 아닌 건 아니라 말하라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우리는 어겨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성경무오설만큼 신앙인을 신앙의 잘못된 끝단으로 끌고가는 무서운 올무도 없을거라고 봅니다. 수많은 이단이 바로 이런 잘못된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수많은 이단들의 기괴하고 억지스러운 성경해석이 그들 내부적으로 당연시되는 근거가 바로 성경무오설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라는 걸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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