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이 곧 행복이라 믿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자신이 계속 존재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축복일까? 영원한 삶이 과연 살아갈 만한 삶일 까? 봄이 특별한 것은 겨울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의 무더위가 있기에 가을의 바람이 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계절이 변하 지 않는다면 봄의 온화함도 가을의 선선함도 느끼지 못한다.
삶의 아름다움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유한함이다. 많은 사람이 영원을 원하지만 끝이 없으면 감각은 무뎌지고 아무것 도 소중해지지 않는다. 시간이 정해져 있으면 언젠가는 끝난다 는 것을 알기에 순간을 붙잡고 의미를 찾게 된다. 만약 그 무엇에도 끝이 없다면 모든 순간은 동일해진다. 동일해진다는 건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오늘이든 내일이든 영원히 반복된다 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짧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그 한계가 삶을 더 빛나게 만든다.
유한함은 책임을 부른다. 끝이 있으므로 지금 선택해야 하 고, 지금 행동해야 한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서는 우선순위 를 정하면서 더 선명한 삶을 만든다. 영원한 삶은 달콤한 약속 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삶의 긴장을 없애는 독이다.
끝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끝은 삶을 망치지 않는다. 청춘 은 오래 지속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애틋한 것이며 모든 관계 는 다시 홀로의 삶으로 돌아가기에 함께 있을 때 소중한 것이 고 인생이란 결국 끝나기 때문에 지금 하루가 소중한 것이다.
니체의 책 초월자(위버멘시)에서 나온 인생의 유한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니체가 계절에 빗대어 인생의 유한성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식의 변론에는 공감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인생의 유한성이 굳이 특별한 의미를 가져야만 한다는 강박은 개개인의 삶에 어떤 특별하고 신성한 무언가가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에게 거져 주어지고 있다는 식의 환상을 전제로 하는 예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삶이 구태여 아름다워야 하는가도 사실 의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워야 하기에 유한한 것이라는 생각은 “일단 우리의 삶은 아름다워야 하잖아!”하는 선입견이 다분히 들어가있는 편견일 수도 있는거지요. 시간이 정해져 있으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알기에 순간을 붙잡고 의미를 찾는 다는 니체의 주장이 일견 타당해 보이면서도 설득력이 충분히 담보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왜 우리가 긴 인생을 살면서 굳이 순간을 붙잡고 의미를 찾아야 합니까? 왜 우리의 삶이 아름다워야 합니까? 그건 우리의 삶이 어차피 무한하지 않고 끝이 존재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의미나 아름다움이라도 손에 부여잡고 끝을 맞이하는 게 덜 억울할 것 같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냥 끝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고 그저 무서워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에 발버둥 치고 혼자 있을 때 슬퍼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며 탄식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끝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억울해 하는 끝에 “그럴바엔,,,”아름다움이나 의미를 찾아보자 발버둥치거나 스스로를 괜찮다 속이며 끝없이 자기암시를 거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인가를 생각해본다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또한 제대로 된 근거가 없는 오류가 아닐까요?
하지만, 인용한 글에서 제가 밑줄을 친 부분만큼은 저 또한 고개가 끄덕여지며 동감하게 됩니다. “유한함은 책임을 부른다.”는 니체의 통찰만큼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명제가 아닐까 합니다. 끝이 있고, 그 끝이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인식했다면, 나는 책임있게 선택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언젠가는) 할 수 있는 세상에서라면 (당장은) 책임지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우리는 제한된 시간 안에 나 자신에게, 내 가족과 친구들, 동료들과 내가 속한 공동체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포기하며, 하고 싶은 것들을 참고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유는 누가 억지로 시켜서나 우리의 욕망 때문이 아니라 책임을 지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실만큼은 우리의 삶이 유한한 이상,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현상이자 현실일 수 밖에 없을겁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우리 삶의 끝은 두려워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려워하고 경각심을 가져야만 남은 시간 우리가 “책임”을 다하기 위해 힘써 노력하고 경각심과 긴장감을 두른 채 고민하며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이미 지나간 과거의 시간에 매달려 후회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가 아닌 얼마 남겨지지 않은 우리의 남은 시간 책임지는 삶을 살기 위해선 후회는 사치에 불과하니까요.
결국 중요한 건 “지금 행동해야 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