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 주로 서식하는 귤이 회수를 넘어 북쪽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는 중국 속담이 보통 의미하는 건 “환경의 중요성”입니다. 그런데, 이 고사성어가 생겨난 상황을 돌아보면 생각할 게 좀 더 늘어납니다.
제나라 재상인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초왕이 제나라 출신 도둑을 잡아와 보여주며 “제나라 사람은 다들 도둑놈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대놓고 제나라를 멸시하며 면박을 준겁니다. 이에 안영이 환경(풍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맞대응한 말이 바로 남귤북지입니다.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살 때에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는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하였으니, 초나라의 풍습과 도덕이 문제가 아니겠냐는 거지요.
- 귤은 생물학적으로 탱자와 종이 전혀 다른 식물입니다. 귤이 회수를 넘는다고 해서 탱자가 될 수 없는거지요. 애초에 잘못된 비유입니다. 제나라 재상 안영이 현명한 군자였을지는 몰라도, 생물학 내지 농사에 박식한 학자는 아니었을테니 이런 말을 했고, 초나라 왕이나 대신들도 그걸 몰랐으니 이런 반박이 통해서 말싸움에 졌던 거겠지만, 남귤북지라는 사자성어는 그 자체로 사실이 아닌 거짓이라는 겁니다.
- 사실, 남귤북지니 환경의 중요성 같이 잘못된 팩트에 주목할 게 아니라 제나라 재상이었던 안영의 “임기응변”에 오히려 주목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남귤북지라는 이벤트가 있기 직전에 망히 초나라 왕이었던 영왕은 제나라 재상인 안영이 사신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성문이 아닌 개구멍으로 들어가라는 모욕을 줬었습니다. 그러자 안영은 “내가 개의 나라에 온 것이 아니거늘 어찌 개구멍으로 사람을 들이는가!”라고 일갈했습니다. 초나라가 개의 나라가 되게 할 수는 없었던 초나라 신하들은 결국 그를 대문으로 들였지요.
- 이후에도 안영을 모욕하려는 시도는 계속됩니다. 대전으로 들어오는 동안 칼을 빼든 무사들이 죽 서있는데도 기죽지 않고 “평화를 위해 온 사신을 이토록 두려워 하십니까?”라 꾸짖었으며, 그의 외모를 비하하며 “제나라에는 인재가 없는가? 왜 자네 같이 못난 사람이 왔는가?”라고 비꼬자 “우리나라는 큰 인재는 큰 나라에 보내고, 작은 인재는 작은 나라에 보내는 원칙이 있으니 대왕께서는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받아칩니다. 이후 영왕이 귤을 가져와 대접하는데, 안영은 귤이 없던 제나라의 사람이라서 귤을 껍질째 먹는걸 보고 또 모욕했지만, “본디 왕의 명 없이는 함부로 다루지 않는 법. 까고 먹으라 말하지 않았는데 어찌 귤 껍질을 버리리까?”라며 도리어 초 영왕에게 망신을 줍니다.
- 이러한 안영의 화법은 자신의 말에 신빙성이나 정당성을 담아 상대를 설득하려는 데 있는게 아니라, 상대의 공격이 사실은 자신들의 야만성과 천박함에서 기인한 것임을 드러내어 반격하는 데 있습니다. 속된 말로 아가리 파이터, 내지 온라인 특전사 같은 이들에서 보이는 논법입니다. 재상 안영의 말이나 논리전개는 사실 말싸움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정작 너무나 탁월했던 건 그런 말싸움을 하면서도 상대방이 거기에 분노하거나 반박하기는 커녕, 오히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 모욕하는 걸 그만두게 만든 그의 행동거지, 즉 예의(禮儀)와 품행(品行)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가 모욕을 받아 화가 나서 인상을 쓰거나 말투가 거칠어지면서 이같은 말들을 내뱉었다면, 그는 왕 앞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은 사신으로 목이 잘렸을겁니다. 사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벼운 도발에도 화를 참지 않고 폭발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반성해야 할 필요성을 떠올리고 돌아보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제나라 재상 안영의 “남귤북지”고사가 보여주는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