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를 떠올리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쇠사슬에 묶여 있거나 타인의 명령을 복종하는 사람이 떠오르는가? 그렇지 않다. 진정한 노예는 자기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는 자다. 외형상 자유인처럼 보일 수 있지만 높은 임금을 받거나 좋은 사회 제 도 속에 산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자기가 스스로의 주인 이 되지 못하면 여전히 노예다.
스스로의 주인이 되지 못한 자는 늘 외부에 의존한다. 누군 가가 정해준 규칙과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자기 선택 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시민이라고 불려도 실상은 타인의 명령과 타인의 기준에 매여 산다. 자유는 타인이 주는 선물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란 내가 나를 다스리는 것이다. 욕망을 절제하고 충동을 통제하는 것. 삶의 방향을 자기 손으로 정하고 가슴의 소리를 따르는 것. 이것이 자기 지배다.
자기 지배 없는 자유는 공허할 뿐이다.
노예는 주인이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명령을 받지 않 으면 불안해한다. 그 불안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주인을 찾는 다. 하지만 주인이 바뀌어도 여전히 노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다른 손에 자신이 묶여 있을 뿐이다. 자기 절제를 모르는 사람의 끝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술이나 쾌락, 타인의 인정에 얽매여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살 것이다.
자기 욕망의 노예이자 타인의 평가의 노예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인은
자기 아는 주인을 세운다.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 낸다. 사회가 바뀌고 권력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도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외부가 아닌 내부가 자신의 삶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한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해방 될 수 없다. 자유란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지배의 문제다.
자기 안에 주인이 없는 자는 늘 타인의 명령을 찾게 된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어디서도 노예다. 노예의 쇠사슬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어디서도 노예다. 노예의 쇠사슬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니체의 초월자(ubermensch)에 나오는 노예와 자유에 대한 이야기 원문을 가져와봤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노예는 통상의 노예라는 단어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일종의 비유적 언어입니다. 니체가 말하려 하느 노예는 “자기지배”를 하지 못한 채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해 끌려가고 의존하는 존재를 뜻합니다. 그렇게 자기지배를 방해하는 것이 술이 될 수도, 쾌락이나 타인의 인정이라는 사회적, 심리학적 동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니체가 규정하는 대로라면, 인간은 지난 수십만년의 역사 속에서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 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인간이 집단 내 구성원의 인정과 간섭을 넘어서 어떤 간섭도 없이 스스로를 지배하고 독립된 존재로 남아있는 건 불가능했으니까요.
산업화와 개인화라는 근대 서구사회의 발명이 없었다면 니체가 말하는 자유나 자기지배라는 건 어느 누구도 꿈꾸거나 향유하는게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니체가 말하는 자유는 보편적인 가치나 사회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니체가 말하는 욕망의 절제나 충동의 통제는 사회가 강요하거나 권면하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종교적 태도나 덕성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욕망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을 거부하며, 충동이 나를 이끌고 나 자신이라 주장하는 것을 거부하는 본능과 사회적 통제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반항과 반역에 가깝습니다.
나를 제멋대로 휘둘리게 하는 모든 것들을 통제한 끝에 마침내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된 끝에는 결코 행복이나 성공 같은 달달한 해피엔딩의 결말이 기다리지 않습니다. 니체의 자기지배와 자유는 이를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고통과 인내가 있을 뿐 결과와 결말은 전혀 알 바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행복하고 보람찬 결말에 대한 비전을 전혀 기대할 수 없더라도 우리가 그러한 자기지배를 추구하며 고통과 인내를 감내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해 조종되고 끌려가는 인생이 결코 의미있는 인생이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 우리 인류는 산업화와 개인주의의 물결 속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전 선사시대나 고대, 그리고 중세 시대에선 “나 자신”이라는 인간으로서가 아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에서 자아와 행복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이상 한 집단이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위치와 입장에선 어떤 의미나 만족감 또는 행복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사능 사회인 것을 우리가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받아들이며 더이상 휘둘리며 살지 않도록 각자 노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니체의 충고를 마냥 무시해버리거나, 아니면 거기에 너무 큰 의미를 두면 “나도 위버맨시가 되겠다”며 내용 그대로를 추종하면 안되는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