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만회하는 길은 오직 행동 뿐이다.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른 뒤 쉽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될 거라 믿는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스스로를 책망하고 무릎까지 끓으며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려 한다. 정작 상처받은 사람은 여전히 같은 고통 속에서 머무는 데 말이다. 말이 아무리 절절해도 이미 벌어진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과는 타인을 위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일 때가 많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스스로의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사과한다. 상대의 용서를 바라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가볍게 하고 싶어서 사과를 하는 것이다. 사과가 끝나면 홀가분해지고 관계를 회복한 듯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피해자는 그 장면에서 또 다른 상처를 받는다. 가해자가 자기 비난을 늘어놓는 동안 피해자는 오히려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새로운 짐을 짊어지는 것이다.

진심 없는 사과는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기만이다. 스스로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믿지만 상대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고 심지어 그 상처는 사과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져 더 복잡해진다. 피해자는 이제 그만 잊으라는 압박을 느끼고 가해자는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위안 속에 안주한다. 그 간격 에서 진짜 치유는 멀어진다. 잘못을 만회하는 길은 오직 행동 뿐이다. 파괴된 것은 말로 복귀되지 않는다. 잃어버린 신뢰는 말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고 옳은 행동의 반복이 필요하다. 잘못을 바로잡고자 한다면 말보다 먼저 행동이 변해 야 한다. 상대가 상처 입은 것을 직접 고쳐 줄 수 없다면 적어 도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올바른 행동을 계속하겠다는 꾸 준한 증거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속죄다.

사과는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사과를 하려면 반드시 그 뒤에 행동이 따라야 한다. 말은 쉽게 사라지지만 행동은 남는다. 상처는 단숨에 치유되지 않지만 올바른 변화를 증명하는 삶은 결국 상대의 마음에도 흔적을 남긴다. 말은 가볍지만 행동은 무겁다. 진짜 속죄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된다.


파괴된 것은 말로 복귀되지 않는다는 니체의 지적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과는 행동으로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말로 하는 사과나 자기위안을 위해 시작하는 사과는 기만에 불과하다는 엄중한 경고를 듣고도 “그나마 사과조차 하지 않는 자”를 욕하며 그들보다 내가 더 낫다고 안심하고 안주하는 위선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사과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자나 자기위안을 위해 말로만 사과하는 자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요? 길가에 똥을 싸는 사람과 길 한가운데 똥을 싸는 사람은 “교화의 가능성”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말할 수 있겠으나, 두 행동 모두 “눈 뜨고선 차마 보기 어려운 막되먹은 행동”이라는 점에서만큼은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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