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중에 금송아지가 아닌 황소를,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신 여호와의 발을 상징하는 황소를 “우상”이라 칭한다면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날개달린 사자 형상의 동물인 그룹 동상도 우상이라 할 수 있다는 비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여로보암의 아들인 “아비야”라는 이름이 “야훼는 나의 아버지이시다”라는 뜻이라는 대목은 생각해볼 게 많습니다.
여로보암이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열렬히 신앙하는 방식 중 하나로서 황소를 상징으로 내세웠으며 그러한 행위가 여로보암의 독단이 아닌 기존의 신앙적인 권위와 전승을 추종한 것이었다는 설명은 쉽게 반론하기 어렵습니다. 신이 강림하게 하는 매개물 내지 신을 나타내는 상징을 의미하는 일종의 대좌(臺座)로서 황소를 내세웠다는 거지요. 불교에서 부처가 서있는 자리에 연꽃이 대좌로 나오는 것과 같은 개념이고 성경에도 “하나님의 발등상”이라는 개념이 존재합니다.
어찌 되었든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보다 훨씬 먼저 멸망했고, 구약성경은 더 오래 생존하다 멸망한 남유다 출신의 성직자들이 기록한 문서라는 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국력이 강하고 더 큰 나라라고 해도 자신들보다 더 큰 제국에 의해 무너져 자신들의 신앙과 문화를 잃어버린채 지배자들에 동화되버린 북이스라엘에 반해 약해도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며 끝까지 살아남았던 남유다 성직자들이 “승자”로서 역사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기록할 수 있었던 것 그 자체로도 하나님의 중요한 메시지가 될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