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를 아는가? 판도라는 신들로부터 하나의 상자 를 선물 받았다. 겉모습이 무척 아름다웠기에 사람들에게 행복의 상자라고 불렸다. 하지만 그녀가 상자를 열자 그 안에 있던 살아 움직이는 모든 재앙들이 세상으로 흩어져 나왔다. 그때부 터 지금까지 재앙들은 밤낮으로 인간을 괴롭히며 떠돌고 있다.
그러나 신의 명령에 따라 판도라가 서둘러 뚜껑을 닫은 덕분에 단 하나의 재앙만은 상자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인간은 그 행복의 상자를 영원히 집 안에 간직하며 그 안에 딱 하나 남은 재앙을 보물이라고 여기며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다. 마지막 남은 재앙은 바로 희망이다.
인간은 고통을 견디기 위해 희망을 붙잡는다. 그러나 희망이야말로 신이 만든 가장 정교한 속박이다. 인간이 스스로 생을 포기하지 않도록 고통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그 장치는 단순하다.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다. 희망은 언제나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된다. 사랑처럼 달콤하고 신념처럼 고결하다. 그러나 그 달콤함은 인간을 현실 에서 더 멀어지게 만든다. 지금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대신 고통이 끝나지 않게 만든다. 희망이 없다면 인간은 절망 속에서 진실을 보지만 희망이 있는 한 인간은 스스로를 속인다. 실패한 자는 다음에 잘될 것이라고 말하고 병든 자는 곧 나을 것이 라고 속삭인다. 희망은 절망의 연장이다. 희망이 있는 자는 언제나 기다린다. 내일의 구원, 누군가의 변화, 운명의 반전을 기다리며 미래라는 허상 속에서 살아간다. 내일을 믿음으로써 오늘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고통을 지연시키는 일종의 독이다.
희망을 버린 자는 진실을 본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며 헛된 기대를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 한다. 병에 걸렸을 때도 언젠가 나을 거라며 하루하루 악화되 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내일을 보지 않기 때문에 시선이 오직 지금을 향하는 것이다. 고통을 피하거나 의미 없는 낙관으로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정면으로 통과하게 된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데 무엇을 기다리겠는가? 그저 지금 뚫어야 할 뿐이다. 삶이란 완성되어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 빚어야 하는 것이다. 고통은 그 조각의 흔적이며 절망은 도구의 날이다. 그것이 인간의 삶을 빚는다. 희망을 버린 자는 지금을 얻는다. 내일의 구원을 바라지 않기에 오늘의 고통을 자기의 힘으로 전환 시킨다. 기다리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라. 희망을 버리고 고통을 견뎌라.
진정한 삶은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희망은 위안이 아니라 환상이다.
희망이 위안이 아니라 환상이라는 니체의 주장에 동의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오늘의 고통을 버티기는 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행동을 하는 데에는 막상 주저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는 희망은 우리늘 살리는 힘이 아니라 정말 고통을 인내하고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고 도망치는 도피에 가까울 수 있는걸 깨닫게 됩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가면을 뒤집어 쓴 도피와 게으름은 언젠가는 비겁한 본성을 스스로 드러내며 실패와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희망과 긍정으로 나를 무장할 게 아니라 고통을 온전히 인식하고 받아들이면서 인내하며, 지난 날의 부족했던 것들과 잘못된 것들을 정확하게 점검하며 앞으로를 준비해야 합니다. 물론, 정작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저 가만히 두들겨 맞으며 버티는 것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넘어져 절망과 나락에 빠지기 쉬운게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런 실태를 그 자체로 바라보고 냉정히 이를 인정하며 고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그러한 고통과, 고통받게 만든 나의 부족한 점들로 인해 추락한 내 자존감을 가리고 없는것처럼 속이는 시도를 거듭한다면 설령 그런 시도가 희망과 긍정이라는 아름다운 가면을 쓰고 있다한들 그건 내 인생도 아니고, 진실한 것도 아닐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