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감정을 통해 세상을 느끼고 그 감정으로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감정은 언제나 한발 늦게 도착한 반응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야 생겨나는 것이 감정이기 때문이다.
괴로운 일이 생기고 나서 괴롭다는 감정이 느껴진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고 나서야 고통스럽다는 감정이 느껴진다. 어떤 상황 없이 감정이 느껴지는 경우는 없다. 이 사실을 기반해서 생각해 보면 감정은 이해가 아니라 여운에 가깝다.
감정에 사로잡힌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감정에 빠지면 진실을 놓치기 쉽다. 감정은 늘 자신의 편이기 때문이다. 분노는 상대의 잘못만 보게 하고 연민은 상대의 책임을 흐리게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인간적인 따뜻함이라고 부르지만 그 따뜻함은 판단을 녹여버린다.
냉정함은 미래를 보는 힘이다. 감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일어나기 전의 순간을 명확히 보는 하나의 능력이다.
차가운 정신은 사건과 자신 사이에 간격을 만든다. 그 간격이 깊을수록 판단은 명확해진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유독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나와 너무 가깝게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그다지 큰일이 아니다. 거리를 둘 수 있게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냉정함이다. 냉정함을 많은 사람이 차가운 심성으로 오해하지만 감정을 부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현실을 다스릴 줄 아는 통제의 미덕이다.
냉정한 자는 감정이 자기 안에서 어떤 모양으로 자라나는지를 관찰한다. 감정을 느끼되 판단을 서두르지 않고 감정을 느끼되 함부로 빠져들지 않는다.
인생의 진실이 따뜻할 것 같은가? 진실은 따뜻하지 않다. 잔인하고 무표정하고 침묵 속에 있으며 때로는 그 어떤 고통보다 혹독한 것이 진실이다. 감정이 섞이면 진실이 흐려진다. 연민은 판단을 왜곡하고 분노가 사실을 부풀리고 나에게 일어난 일 이라는 이유로 거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감정은 쉽고 달콤하다. 냉정함은 어렵고 고독하다. 감정은 안락하지만 진실은 불편하다. 그러나 인간은 냉정할 때만 진실에 닿을 수 있다. 어떤 감정이 느껴졌을 때 그것이 분노, 슬픔, 기쁨, 환희, 연민, 증오 그 무엇이든 간에 감정에 굴복하지 않고 현상을 제대로 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극히 드물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고 어려운 것을 해내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가 아니겠는가. 감정은 순간을 지배하지만 냉정함은 인생을 지배한다. 현실을 직시하려면 냉정해져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
본문에도 나오지만 냉정함과 매정함(본문에선 차가운 심성)은 다른 개념입니다.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관조하며 잔인하고 차가운 진실을 직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마땅히 초월자(위버멘시)라 불리울 자격이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어떻게 보면 니체가 말하는 “냉정한 자”야말로 오욕칠정을 극복하고 열반에 오르는 불교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습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니체가 역설하는 초월자란 “안주하는 자”에 반대되는 개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안주하는 사람은 편하고 익숙한 무언가에서 나오지 않고 웅크려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감정은 항상 자신의 편이기에 현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가려가면서까지 기꺼이 스스로를 안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스스로 알의 껍질 속에 갇혀서 나오지 않는 것처럼 자신을 지지해주고, 자신을 위로해주며 자신을 긍정해주는 감정에 계속 스스로를 내맡기며 감정에 휩쓸리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면, 결국은 자신의 자존감을 흔드는 그 어떤 것에도 배타적이고 신경질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어느덧 사회라는 시스템 속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쉽고 달콤한 길을 거부하고 어렵고 고독한 길을 자원해서 걸어가야 합니다. 이건 정말 중요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