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삶이 너무 무겁고,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질 때 잠시라도 피할 곳을 찾는다. 현실은 견디기에 너무나 괴롭고 환상은 도망치기에 너무나 부드럽다. 그래서 인간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 속에서 위로를 택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신념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운명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쾌락이라고 부른다. 이름은 다 다르지만 그 본질은 같 다. 견딜 수 없는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한 장치다.
환상은 달콤하지만 동시에 중독적이다. 처음에는 위로가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구속된다. 그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실로 되돌아올 힘을 잃는다. 괴로울 때마다 사람에게 기대면 그 사람은 절대 혼자 서 있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다. 인생이 지루할 때마다 쾌락에 기대는 사람은 더 큰 쾌락을 찾아 나서면서 점점 자신을 파괴한다.
인생이란 원래 고통이고 지루한 것이지만 현실의 차가움보다 환상의 따뜻함이 익숙해질 때 진짜 삶을 감당할 근육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도 죽은 것이다. 환상은 단지 현실을 미루는 시간일 뿐이다. 도피의 끝에는 언제나 내가 처한 현실이 그 자리에 그대로 혹은 훨씬 더 난폭해진 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환상 속에서 위로를 받아도 결국 돌아와야 할 무대는 현실이다. 진짜 삶, 진짜 고통, 그리고 진짜 나 뿐이다.
인간은 피로 속에서 달콤한 거짓을 찾고 그 거짓 속에서 자신을 잃는다. 인간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은 현실뿐이다. 현실 은 거칠고 잔인하지만 그 안에서만 진짜 힘이 자란다. 환상은 인간을 위로하는 척 타락시키지만 현실은 인간을 괴롭게 하는 척하고 결국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 쾌락은 잠시 나를 위로해 줄 뿐 결국 나를 약하게 만든다. 무엇이 되었든 절대 도피 하지 마라.
얼핏 보기엔 뻔해보이는 교훈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인간을 회복하게 만드는 것은 현실 뿐이다”는 통찰은 정말 위대한 깨달음이 아닌가 합니다. 단순히 마음의 상처나 고통, 좌절감과 같은 심리적인 데미지를 회복하는 것은 여러가지 방법론이 있습니다. 그런 방법들 중에서는 잠시간의 쾌락이나 위로, 심지어는 잠깐동안의 환상이나 현실도피도 분명 효과가 있습니다. 정말 너무나 고통스럽고 절망한 끝에 극단적인 선택이나 자포자기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어주면서 상황을 호전시키는 기회를 모색하는 데에는 유용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우리의 “기분”을 나아지게 할 뿐이지 우리가 위기와 역경을 버티고 극복하는 능력, 즉 체력과 의지를 회복시켜주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잠시동안 도피할 수 있지만 그러한 도피를 오래, 그리고 자주 한다고 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더우기 조건반사와 같이 어떤 역경이나 위기가 오더라도 “일단 도피하고 보는” 습관이 생긴다면 정말 크게 넘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워도 일단은 도피하지 말라는 니체의 충고가 참으로 의미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