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이 강하다고 믿는다. 위기 앞에서도 의지를 말하고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기에 스스로 강하다고 믿지만 이 믿음은 경험의 부재에서 비롯된 착각에 불과하다.
아직 충분히 부서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견고하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한 순간의 상실, 한 번의 배신, 한 마디의 모욕만으로도 인간의 자존은 무너진다. 그제야 깨닫는다. 나의 정신은 강철이 아니라 얇은 유리처럼 쉽게 깨지는 물질이었다는 것을.
인간은 환경에 휘둘리는 존재다. 환경이 부패하면 인간도 부패하고 선한 자도 오랫동안 비참한 환경에 머물면 결국 비참한 사람이 된다. 환경의 힘이 한 개인의 성품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도덕을 만든다. 도덕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장치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때 통제하고 있다고 믿기 위해 법칙을 새우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강해지려면 가면을 벗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거짓된 도덕의 보호막을 벗겨내야 한다.
내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나약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힘든 일일 것이다. 인간은 애초에 인정을 쉽게 하는 동물이 아니다. 그런 본능을 가진 인간이 자기 자신이 나약하다는 것까지 인정 하는 건 애초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인정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진정한 강자는 환경에 의존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한계와 나약함을 동시에 받아들인다. 내가 흔들릴 수 있는 존재임을 알면 인생이 흔들릴 때 견디는 법을 찾게 된다. 내가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 수 있을지 고민 하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 고통은 그저 훈련이며 흔돈은 나를 성장 시키는 재료일 뿐이다.
인간은 아직 충분히 무너져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그때 두 가지 길이 있다. 무너짐을 부정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것. 그 무너짐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자신을 세우는 것. 전자는 그저 볼품없는 인간이 될 뿐 이지만 후자는 창조자가 된다. 고통을 의미로 바꾸고 상처를 통찰로 바꾸며 무너진 자리를 힘의 근원으로 만든다. 인간은 강한 것이 아니라 아직 부서질 차례가 오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깨달았을 때가 진짜 강한 내가 될 수 있 는 시작점이다.
진짜 내 인생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정말로 내 인생이 흔들렸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자기 인생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곧바로 자신의 약하고 무능하며 하찮음을 증명하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겠죠.
물론, 이런 주장에 반박하면서“나는 나의 약함을 잘 알고 또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겁니다. 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이 겸손과 온유함을 장려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가 없는 이들이라도 사회적인 통념과 도덕이 이를 장려하기 때문에 자신도 그러한 온유함 넘치는 존재인 척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약함과 자신의 인생이 흔들릴 수 있음을 온유하게(?) 인정하는 사람들조차 정작 그런 일들을 당하게 되면 자신의 예상과 상상을 뛰어넘는 현실의 적나라함에 당혹스러워 하거나 좌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가져왔던 자신에 대한 허상과 망상이 깨진 연후에야 비로서 진정한 성장의 첫걸음이 떼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이 진정 어디까지 약하고 초라하며 볼품없는 존재인지를 깨닫고 나서야 더 강하고 나아진 존재로 변하기 위한 진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며, 내 인생이 정말 제대로 흔들려 봐야 그러한 시련과 좌절에서 이를 견디는 법을 찾아 헤멜 수 있을것입니다.
가면을 벗지 못한다면, 나는 알을 깨고 나올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