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 쇼크

닉슨이 미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 경제상황이 좋았던 게 아닙니다. 이미 이전 포드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라는 대대적인 복지정책과 베트남전쟁 등으로 엄청난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은 이미 시작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닉슨은 1972년 재선에 이기기 위해 경제가 계속 호황을 이어나가길 원했고, 그걸 위해 동원했던 수단들은 우악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충격적인 경제행보를 일컬어 “닉슨쇼크”라 칭했습니다.

그런데, 이 닉슨쇼크라 하면 대게 1971년 8월15일에 있었던 금태환 정지 선언, 즉 브래튼 우즈 체제 탈퇴만을 떠올리는데 실물 경제에 치명타를 가했던 또다른 정책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드뭅니다. 1971년 8월부터 90일간 모든 임금과 물가를 강제로 동결했던 게 미국 경제에는 훨씬 더 치명타를 가했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계속되던 인플레이션 압력을 금리인상이나 긴축같이 인기 없는 정공법으로 대응하지 않고 그냥 국가권력으로 물가와 임금을 동결시켜버린 그의 정책은 아이러니하지만 발표 직후엔 엄청난 환영을 받았습니다. 물가는 잡혔고(당연하겠죠) 주식시장은 유래없는 강세장으로 폭등을 했습니다. 그렇게 권력으로 시장을 때려잡는 방식의 시장접근에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한 건 1년을 훌쩍 넘긴 후였습니다.

고기를 이전과 같은 가격으로만 팔 수 있는 상황에서 최종소비자와는 관계가 없어 규제항목에서 빠진 사료값은 계속 오르다보니 농부들은 가축을 도축하지 않고 폐사시켰습니다. 목재도 나무를 베고 운송하여 가공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계속 오르다보니 목재를 생산하면 할수록 적저가 커지는 구조라 목재생산도 중단되는 식으로 가격을 동결시키니 물건이 씨가 마르는 현상이 닉슨의 재선 이후 계속되었죠.

결국은 이런 품귀현상에 고통받다 1974년 가격통제가 해제되자, 물가상승률은 무려 11%에 달했습니다.

권력으로 시장을 때려잡겠다는 접근방식은 대에 이런 식의 전개를 보여줄 수 밖에 없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정책이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제재와 간섭을 이어나가거나 결국 부작용 때문에 정책을 포기하면 문제가 훨씬 더 크게 증폭되어 재발하는 둘 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결국은 모든 이들이 고통을 분담하면서 충분한 강도와 기간 동안 재정과 통화 모두 긴축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은 결코 근원적인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지금 이 시점에 미국을 물론이고 그 어떤 나라도 긴축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나라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겠죠.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특단의 대책”을 동원해서라도 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기까지는 앞으로도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미국만 해도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서민경제가 완전히 거덜나서 경제보다 물가를 먼저 잡아야 한다는 거국적 컨센서스가 형성되었던 1980년이 되어서야 폴 볼커를 연준의장으로 앉히고 두자릿수 기준금리라는 출혈글 감수하는 실질적 해결책을 들고 나왔으니까요.

확실히 역사는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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