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 북이스라엘의 왕인 “예후”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선지자 엘리사의 제자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왕들(요람, 아하시야)을 죽이고, 아합 왕의 아내였던 이세벨까지 죽여 숙청했으며, 계책을 써서 바알 신관들을 죽이고 바알 신전을 파괴했습니다. 그러한 예후의 행동에 하나님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열하10:30)”
그런데, 그러한 선포 후에 이어진 결과는 아람 왕 하사엘에 의해 이스라엘은 공격당하고 국토가 여기저기 침탈당하며, 왕의 계보는 이후 4대를 이은 후 끊어집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 밖의 역사자료나 고고학 유물들이 시사하는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 아람 왕 하사엘의 승전기념비에는 요람과 아하시야를 하사엘 본인이 직접 죽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겨 적을 죽인 것을 기념하는 기념비에 해당 내용이 자랑스러운 치적으로 기록되었다는 건 예후의 쿠데타와 왕 살해가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하사엘이 예후에게 쿠데타를 직접 명령했거나 사주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는 기록입니다.
- 이후 예후는 하사엘의 간섭과 침략에 국토를 빼앗기다 앗시리아의 살마네세르 3세에게 무릎을 꿇고 조공을 올립니다. 그것도 직접 살마네세르 3세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박아 절하는 장면의 부조와 조공한 물품의 목록까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예후의 쿠데타는 과정에 어떤 정당성도 없었으며, 결과적으로도 여러 외세에 굴종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종교적으로도 당시 강력한 기득권세력이던 이세벨의 바알 신앙만을 축출했을 뿐 이후 아람과 앗시리아의 영향에서 독립했다는 어떤 이야기도 없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전후 맥락이 없는 예후의 기름부음 과정, 하나님의 칭찬과 그 댓가로 주어진 축복이 다른 왕들과 달리 지나치게 구체적이면서 맥락 없음, 사실 이스라엘의 압제자라 불리우는 하사엘도 하나님이 왕으로 삼아 기름부음을 받은 자(열왕기 상)라는 사실 등등 생각하면 할수록 성경 기사들이 후대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재조합된 기록일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성경 외적인 고고학적 자료나 유물들이 증거하고 있는 팩트들은 차치하고라도, 성경 속 기록들만 따져도 결국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기름부음 받은 두 왕, 즉 아람 왕 하사엘과 이스라엘 왕 예후의 행적들만 봤을 때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쓸데없는 행위처럼 묘사되고 있는 걸 깨달을 수 있다면, 성경을 정말 주의깊게 읽고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