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 – 정지용

난초 난초잎은 차라리 수묵색. 난초잎에 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 난초잎은 한밤에 여는 다문 입술이 있다. 난초잎은 별빛에 눈떴다 돌아 눕다. 난초잎은 드러난 팔구비를 어쩌지 못한다. 난초잎에 적은 바람이 오다. 난초잎은 춥다.

유리창 2 – 정지용

유리창 2 내어다 보니 아조 캄캄한 밤, 어험스런 뜰앞 잣나무가 자꼬 커올라간다.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나는 목이 마르다。 또, 가까히 가 유리를 입으로 쫏다。 아아, 항안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 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선처럼 흔들리는 창。 투명한 보라ㅅ빛 누뤼알 아,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릊내라。 나는 열이 오른다。 뺨은 차라리 연정스레히 유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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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1 – 정지용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琉璃)**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 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새처럼 날아 갔구나!

바람 – 정지용

바람 바람 속에 장미가 숨고바람 속에 불이 깃들다. 바람에 별과 바다가 씻기우고푸른 뫼스부리와 나래가 솟다. 바람은 음악의 호수.바람은 좋은 알리움! 오롯한 사랑과 진리(眞理)가 바람에 옥좌(玉座)를 고이고커다란 하나와 영원(永遠)이 펴고 날다. 나는 항상 바람과 함께하며 바람도 항상 나와 함께 하지만 나는 바람을 생각하지 않는다. 바람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새로울 게 없어 시시하니까. 바람에 흔들리는 장미를 바라보며, 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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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츰(아침)

아츰(아침)프로펠러 소리………… 선연(鮮姸)한 커-브를 돌아나갔다. 쾌청(快晴)! 짙푸른 유월(六月)도시는 한층(한層) 더 자랐다. 나는 어깨를 고르다. 하품…… 목을 뽑다. 붉은 송닭모양 하고 피여 오르는 **분수(噴水)**를 물었다…… 뿜었다…… 햇살이 학빡 **백공작(白孔雀)**의 꼬리를 폈다. **수련(睡蓮)**이 **화판(花瓣)**을 폈다. 옴으라졌던 잎새, 잎새, 잎새. 방울 방울 **수은(水銀)**을 바쳤다. 아아 **유방(乳房)**처럼 솟아오른 수면(水面)! 바람이 굴고 게우가 미끄러지고 하늘이 돈다. 좋은 아츰―― 나는 탐하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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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 정지용

비극 (悲劇) 「비극」의 흰얼굴을 뵈인격이 있느냐? 그손님의 얼굴은 실로 미하니라. 검은 옷에 가리워 오는 이 고귀한 심방에 사람들은 부질없이 당황한다. 실상 그가 남기고 간 자취가 얼마나 향그럽기에 오랜 후일에야 평화와 슬픔과 사랑의 선물을 두고 간줄을 알았다. 그의 발옴김이 또한 표범의 뒤를 따르듯 조심스럽기에 가리어 듣는 귀가 오직 그의 노크를 안다. 묵이 말라 시가 써지지 아니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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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 – 정지용

毘盧峯 (비로봉) 白樺(백화)수풀 앙당한 속에 季節(계절)이 쪼그리고 있다. 이곳은 肉體(육체)없는 寥寂(요적)한 饗宴場(향연장) 이마에 시며드는 香料(향료)로운 滋養(자양)! 海拔五千(해발 오천)픠이트 卷雲層(권운층)우에 그싯는 성냥불! 東海(동해)는 푸른 插畵(삽화)처럼 움직 안고 누뤼 알이 참벌처럼 옮겨 간다. 戀情(연정)은 그림자 마자 벗쟈 산드랗게 얼어라! 귀뜨람이 처럼.

바다 – 정지용

정지용 시인의 시집 초판본 맨 처음에 나온 시 “바다” 를 촬영해서 올려봤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시인 “향수”를 감상하려고 책을 다운받았는데, 초판본만의 냄새(!)를 전달하기엔 텍스트 보다 직접 촬영하는게 필요하겠더군요. 낯선 글자들이 마치 이국적인 느낌까지 들지만, 읽다보니 정지용 시인이 어떤 바다를 보고 있었는지 눈에 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