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줄인다는 것은 결핍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충만해지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으면 남아 있는 것의 가치가 오히려 선명해진다. 한 개의 빵이 진짜 배고픔을 채워주듯, 한 사람의 우정이 많은 관계보다 더 깊은 의미를 준다. 욕망을 줄이는 것을 손해라 생각하지 말라. 패배도 아니다. 욕망을 줄이는 것은 오히려 회복이다. 필요한 것만 남았을 때 삶은 가볍고 선명하기 때문이다.
삶을 가볍게 하고 싶다면 필요한 만큼만 원하라. 과한 소유는 삶을 무겁게 만들고 절제된 소유는 삶을 가볍게 한다. 욕망을 줄이면 짐이 줄어들고 짐이 줄어들면 삶은 가벼워진다.
니체가 책 초월자(Ubermensh)에서 욕망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욕망은 결핍에 대한 보상심리가 아니라 삶을 사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인간은 물리적으로 무언가가 결핍되있지 않더라도, 오히려 필요 이상의 소유를 한 상태에서도 욕망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즉, 욕망은 결핍이나 소유와 별다른 관련이 없는, 삶을 살면서 내리는 선택이자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결핍이라는 개념도 물리적인 부족함과는 큰 상관이 없을 수 있습니다. 식량이 없어서 굶어죽는 상황을 전제한다면 당연히 “물리적인 결핍”이라는 개념이 정당하겠지만, 이러한 소수의 예외를 뺀다면 “결핍”이라는 것 또한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며 통제할 수 있는 심리현상에 더 가까운 개념일 것입니다.
욕망을 줄이고, 결핍도 절제했을 때 니체가 보여주는 비전은 다름아닌 “회복”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욕망을 줄이고, 결핍을 느끼는 부족함을 인식하는 한계치를 늘렸을 때 실제로 내 육체와 정신의 회복을 체험했던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것은 그러한 체험이 말 그대로 종종,,, 아주 가끔씩만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나 자신이 나의 욕망을 줄이고 제어하는 데 성공적이지 못했던 거지요.
그 어느 때보다 나에게 “회복”이 절실한 지금 나는 소유와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절실함을 새삼 되새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