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태어난 존재는 누구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안다.
그 일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머리보다 가슴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 알고 있다. 그 일은 즐거운 게 아니다. 무겁고 피로하며 고통스러울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렇기에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 지금은 때가 아니야. 같은 말들로 인간은 자주 미룬다. 그 말은 순간 달콤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삶은 게으름을 용서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외면할수록 그 일은 점점 더 커지고 더 무겁게 돌아온다. 처음엔 가벼운 불안이었다가 마침내는 마음의 병으로 번진다. 흔히 병을 불행이 라 부르지만 실은 삶이 보내는 경고문이다. “너는 아직 네가 해 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라는 선언과 같다.
이유 없이 의욕이 사라지고 이유 없이 불안해지고 아무리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내가 진짜로 해야 할 일을 외면할 때 몸과 마음이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삶은 언제나 균형을 맞추려 한다. 사람들은 자주 핑계를 대며 자신의 책임에서 도망치지만 삶은 그런 변명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도망은 자유가 아니라 자기 부정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도망치면 편하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쉬는 척해도 마음은 계속 불안하다. 삶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공평하다. 책임을 무시한 자에게는 고통이 주어지고 삶의 무게는 견디는 인간은 단단해진다. 스스로의 의지를 발견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해야 할 일은 피할 수 없고 도망칠 수도 없다. 결국 어떻게든 해내야만 한다. 피할수록 육체의 병으로 오든, 관계의 파탄으로 오든, 내면의 공허로 오든 결국 그 무게는 반드시 되돌려 받는다. 그 무엇이 되었든 도망치지 말라. 피하지도 말라. 삶이 맡긴 무게를 그대로 들어 올려라. 운명을 피하면 벌을 받듯 책임을 버리면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
삶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게으름이다.
니체는 그의 저서 초월자에서 “삶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게으름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다보면 삶이 싫어하는 것이 게으름이라기 보단 좀 더 정확히는 비겁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살면서 불편하고 고통스러우며 이해할 수 없어 당혹스러운 일들을 마주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겁니다.
편하고 기분 좋은 일, 도파민이 넘쳐나는 사건이 아니라면 피하려는 태도는 “게으름” 보다는 “비겁함”이라는 단어가 좀 더 어울립니다. 삶이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비겁함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하기사, 비겁함과 게으름을 서로 칼로 베어내듯 구분해서 다룰 수 있는 개념도 아닐테니 구태여 이 둘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을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마음이 “게으름” 보다는 “비겁함”이라는 악덕에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하며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비겁함이라는 단어를 쓰며 날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각오를 다지는 게 더 유용하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