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특징 중 하나는 세상을 바라볼 때 언제나 평가하려 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좋다고 말하거나 나쁘다고 말한다.
아름답다, 추하다, 선하다, 악하다 같은 말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방식이지만 이 평가는 세상 자체에 본래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덧붙인 잣대일 뿐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 때 그것을 좋다 혹은 나쁘다고 말한다. 농부에게는 비는 축복이지만 여행자에게는 불편이다. 그렇다면 비 자체 는 선한가, 악한가? 어떤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 없다. 비는 단지 내릴 뿐이다. 거기에 의미를 붙이는 것은 인간이다.
지진과 같은 재해를 두고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신화 속에서 사람들은 지진을 신의 분노라고 보았다. 그 시대의 인간은 지진을 막으로 이해했다. 오늘날은 지구의 움직임으로 설명한다. 현상은 변하지 않았는데 해석이 바뀌자 평가도 달라지는 것이다. 세상에 본래 선이나 악은 없으며 오직 인간이 만든 관점만 있을 뿐이다.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의 언어도 사실은 같은 오류 위에 서 있다. 낙관주의자는 세계가 본래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비관주의자는 세계가 본래 나쁘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세계는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내가 느끼는 행복과 불행, 만족과 좌절이 덧씌워진 것일 뿐이다.
가장 좋은 세상이라는 말도, 가장 나쁜 세상이라는 말도 결국 내가 나의 감정에 따라 만든 평가다. 내 고통이 크면 세계는 잔혹하게 보이고 기쁨이 크면 세계는 아름답게 보인다. 세계는 그 자체로 단순하게 존재한다. 강은 흐르며, 별은 빛나고, 생명은 태어나고 죽는다. 이 모든 과정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이 사실을 직시하는 것은 불편하다. 인간은 평가를 통해 안 도감을 얻기 때문이다.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어야 마음이 안정된다. 하지만 세상은 본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의미를 강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 보라. 선 도 악도 고통도 기쁨도 혼내 주어진 것이 아니므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 어떻게 살아갈지는 오직 우리에게 담겨 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그저 단순할 뿐이고 그 의미를 묻고 해석 하는 것은 인간의 고질병이다.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 혹은 설계되었는지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의 마음에 어떤 형태로든“확신”과 그 확신을 근거로 만들어지는 “안정감”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본능이 탑재되어 있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확신이 인간이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무척 단순하고 빠르게 만들어주긴 하지만 그러한 기민함과 판단의 속도가 오히려 우리의 생존과 행복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 또한 매우 흔합니다.
당장 투자만 해도 그렇습니다. 투자를 하는 모든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확신은 대부분 잘못된 편견과 오류가 되어 투자를 망치며 우리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는 합니다. 그만큼 인간의 진화속도와 비견할 수 없는 속도로 문명이 발전하고 산업화를 넘어 정보화사회라는 극단적인 변화의 연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본능에 의존하면 안되는거지요. 비단 투자 뿐 아니라 정치나 학문, 심지어는 신앙의 영역에서조차 확신은 우리들 스스로를 망치게 하는 주범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문명사회를 살면서 몹시 빠르게 발전해온 몇몇 영역들에서는 선악의 판단을 배제하고, 편견이나 가치관, 또는 선악과 호오의 구분을 배제한 채 그대로를 “직시”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