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본질 – “나는 거부한다”에서

그는 지름 6cm에 달하는 결석을 요로로 뱉어내며, 아주 추악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이건 무슨 목소리지…? 신님이십니까? 신이시여!”

그리고 그는 아주 괘씸하게도, 다 죽어갈 때가 되어서야 신을 찾았다.

“신이시여.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소서. 이제 나는 살아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허락도 없이 신이 내린 왕을 죽이꼬, 금기를 범한 민족의 수장은 기만적이게도 죽기 직전에서야 자비를 구했다.

“신이시여! 이제 저는 황제도 무엇도 아닙니다. 시민들의 뜻에 의해 아무것도 아니게 된 자입니다. 부디 저를 연옥에 가두어 삶아주옵소서!”

[행적 : 후회를 얻었습니다.]

애초에 그 무엇도 아니었던 무능한 자는 허물이 벗겨지고 나서야 구원을 갈망했다. 당연히,

[행적 : 후회를 박탈당했습니다.]

신께서 그를 거둘 이유 따윈 없었다.

“이제 제게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아니, 이건 애초에 그가 프랑스 민족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결정된 운명이었다.

“저를 지옥으로 끌고 가 주시옵소서.”

책임이 아무리 분산되더라도, 금기를 범한 이들에게 자비란 없다.

“그건 제가 지은 죄가 아닙니다!!”

사실, 정확히 따지자면 이는 나폴레옹 3세의 백부와 그 친구들이 지은 죄긴 했다. 그래서, 루이 나폴레옹 입장에선 자신이 범하지 않은 금기와 짓지 않은 죄값을 대신 치뤄야 하는 억울한 일이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과거가 바뀌진 않는다.

“제발! 신이시여! 천국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가장 먼 자리도 괜찮습니다! 당신 주변에만 있게 해 주시옵소서!!”

금기를 범한 이들은 구원받지 못한채로 세상을 떠돌다 잊혀질 것이다.

“제발!! 제발..”

반쪽짜리라도 프랑스의 피를 잇는 모든 이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신께서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 왜 나한테 그러는 거냐!! 나는 신에게 귀의해야 한단 말이다! 왜 날 거두어가지 않는 거냐!!”

구원해 봤자 쓸모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뭔데 나를 신에게서 떨어트리려 하는 것이냔 말이다!”

나는 신이다. 처음으로 마지막으로 인사하겠다. 홀로 겪어야 할 외로움에 영원히 안녕하길, 운이 좋고 자유로울 유명한 나폴리의 사자여 Charles Louis Napoleon Bonaparte.

“아아, 너구나.”

“내가 신께 버려졌을 때마저 너는 내 곁을 지키는구나.”

“한낪 육체의 고통은 내가 내 혀를 깨물며 사라졌건만,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은 내 마음 안쪽에 조신히 앉아 내 안에서 나를 바라봐주는구나.”

“그래, 나는 이런 이유로 자살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았다.”

“나는 거부했다.”

“나는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했다.”

“고통이여.”

“홀로 남은 내 곁을 맴도는 새침데기야.”

“이리 와서 누워다오. 내 곁에.”

노벨피아 소설 “나는 거부한다”의 chapter 67 “버려진 황제” 중에서


지옥이라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지옥이고 저주스러운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영원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장소에서 고통이라는 것이 그렇게 생각만큼 무섭고 두려운 존재일 수는 없을겁니다. 역설적이지만, 지옥에서 고통은 오히려 축복이자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이 만약 정말로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 곳이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고통이 아니라 “외로움”이며 그러한 외로움조차 홀로 겪어야 한다는 고립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영원한 외로움이야말로 존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저주이자 결핍이기에, 고통이나마 자신과 함께 해준다는 것은 축복이자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상에 기반해서 지옥에 떨어진 한 무능한 인간의 불쌍한 영혼에 대한 묘사가 이렇게까지 처절하고 생생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영원한 고통이 부여되는 지옥이라는 개념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종교인이든, 단순히 상상과 허구의 산물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든 인간에게 있어 진정 치명적인 결핍은 고통이 아닌 외로움이라는 명제만큼은 다들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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